가수 이상은(37). 2년 전 ‘로맨토피아’에서 사랑을 노래했던 그가 13집 ‘더 서드 플레이스(The 3rd Place)’로 돌아왔다. 평단의 지지를 받았던 6집 ‘공무도하가’의 프로듀서 이즈미 와다와 다시 만났고 그의 작업실인 일본 오키나와에서 모든 작업을 완성했다. 음악의 완성도는 더 높아졌고 대중성 또한 놓치지 않으려는 흔적이 엿보인다. 그 자신도 어렵다는 느낌의 ‘공무도하가’와 대중적으로 쉬워진 12집 ‘로맨토피아’의 중간쯤이라는 표현이 알맞다고 했다.
서울 홍익대 근처에 7년 동안 살며 ‘터줏대감’이 돼 버렸다는 그를 5일 인사동 한 갤러리로 불러냈다. “딴 동네 나오니까 신기해요.” 그의 첫마디였다.
―홍대와 이상은은 이제 너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20대 내내 일본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다 서른 살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원래 삼청동 토박이인데 지금은 홍대가 내게 맞다. 늘 어딘가에 새로운 가게가 생기고 한 달 후면 망하고 또 생기고…. 뉴욕의 다이내믹함과 도쿄의 치열함이 여기 있다. 주말엔 공연하는 후배에게 찾아가 기웃거리기도 하고 어떤 클럽에는 나를 위한 VIP 티켓도 마련해 놨다. 동네 이장 다 됐지 뭐.”
―앨범의 뜻이 제3의 공간이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
“오키나와에 1년 넘게 있으면서 하루 일과가 하늘 보기, 구름 지나가는 것 보기, 바다 색깔 변하는 거 보기, 노을 보기, 인생에 대해 생각하기였다. 뻥 뚫리는 바다 앞에서 서울이라는 ‘카오스’를 들여다보니 나도 모르게 도시 생활에 지쳐 있었던 거지. 인터넷 서핑하다 알게 된 용어인데 제1의 공간이 생존, 제2의 공간이 생산의 공간이라면 제3의 공간은 인간이 원래 가지고 있던 본성을 키우는 공간이라고 하더라. 내 노래가 그런 치유의 음악이 됐으면 한다.”
―사랑을 노래한 지난 앨범과 비교하면 다시 예전 음악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대중적인 음악을 지향했던 지난 앨범에선 내가 표현하는 슬픔이나 기쁨도 뻔할 수밖에 없었다. 남자친구를 공개하니 모든 노래를 그것과 연결시키더라고. (그는 지금 연애를 하고 있지 않다.) 이즈미 와다와 함께 작업하며 대중음악에서 벗어날 수 있는 판이 주어졌다. 그래도 많이 쉬워지지 않았나?”
―가수 생활 19년 동안 인터뷰하며 가장 많이 들어본 질문은 무엇인가.
“담다디.(웃음) 강변가요제를 앞두고 학교 선배님이 5곡을 지어 줬다. 할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 좋은 곡은 다른 사람들이 다 들고 가 버렸다. 그래서 남은 한 곡이 ‘그대는 정말’이라는 곡이었다. 만들다 만 곡 같아 다들 비웃는 분위기였지. 이대로 안 되겠다 싶어 춤도 추고 제목도 ‘담다디’로 바꿨는데 아무도 몰랐을걸? 그게 대상을 받을 줄은….”
―‘담다디’로 가수 생활을 시작한 걸 후회해 본 적은 없나.
“쉽고 고상하게 시작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난 혼자 힘으로 노력해 여기까지 올라왔다. 그때는 ‘소방차’의 시대였으니까. 담다디로 시작한 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었다. 나름대로 괜찮았다.”
―자신만의 색깔이 강해 대중적인 반응은 신경 쓰지 않을 것 같다.
“그런 걸 사기꾼이라고 하죠? 대중의 반응에 무심한 건 책임감이 없는 거다. 어제도 밤늦게까지 디지털 차트를 확인했는데 몇 곡이 상위 순위를 차지하는 걸 보고 ‘예스∼’ 했다. 수준 높은 음악으로 대중적으로도 성공하는 것, 쉽지 않은 전쟁이 될 것 같지만 그 어떤 것도 놓치고 싶지 않으니까….”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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