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재도
슬픔의 안쪽을 걸어온 사람은
좋은 날에도 운다
환갑이나 진갑
아들 딸 장가들고 시집가는 날
동네 사람 불러
차일치고 니나노 잔치 상을 벌일 때
뒤꼍 감나무 밑에서
장광 옆에서
씀벅씀벅 젖은 눈 깜작거리며 운다
오줌방울처럼 찔끔찔끔 운다
이 좋은 날 울긴 왜 울어
어여 눈물 닦고 나가 노래 한 마디 혀, 해도
못난 얼굴 싸구려 화장 지우며
운다, 울음도 변변찮은 울음
채송화처럼 납작한 울음
반은 웃고 반은 우는 듯한 울음
한평생 모질음에 부대끼며 살아온
삭히고 또 삭혀도 가슴 응어리로 남은 세월
누님이 그랬고
외숙모가 그랬고
이 땅의 많은 어머니들이 그러했을,
그러면서 오늘
훌쩍거리며
소주에 국밥 한 상 잘 차려내고
즐겁고 기꺼운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 시집 '좋은 날에 우는 사람'(애지) 중에서》
좋은 일로 좋은 날에 우는 것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나쁜 일로 나쁜 날에 우는 눈물과는 짠맛도 다를 것이다. 얼핏 우는 듯 보여도 실은 웃는 것이다. 살아오면서 상처 입은 날들 왜 없겠는가. 바람과 눈과 비 다 견뎌낸 제가 대견스러워 우는 것이다. 소리꾼도 노래에 ‘그늘’이 없으면 명창이 되지 못한다고 한다. 나무도 그늘 깊을수록 큰 나무 아니던가. 좋은 날 마른 웃음 말고, 젖은 웃음 한 줌 없다면 그 생이 얼마나 가볍겠는가.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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