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 오빠, 얼른 나아. 아이 러브 유∼.”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7월 중순 서울 영동세브란스병원 한 병실에는 초등학교 2학년 상민(8) 양이 검은 피부의 한 소년을 끌어안고 있었다. 상민 양의 손에 몸을 일으켜 세운 소년은 굽은 등을 펴는 수술을 받고 누워 있던 에티오피아 소년 아비 아사미뉴(12) 군이었다.
상민 양 옆에는 아빠 곽희문(38) 씨와 아비 군 엄마의 손을 꼭 쥔 엄마 강동희(39) 씨가 서 있었다.
키가 130cm도 채 안 되는 상민 양이지만 아비 군의 몸무게가 19kg밖에 안 되는 탓에 양팔로 안는 데 버겁지는 않았다. 순간 아비 군의 크고 맑은 눈에는 웃음이 서렸다.
가족 중 아비 군을 가장 먼저 안 것은 엄마 강 씨였다.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번역을 하다 해외 공문에서 생후 6개월 때 당한 사고로 척추가 심하게 휜 소년이 한국에서 수술을 받는다는 내용을 보게 되었다.
▶본보 7월 5일 A31면 참조
그날 밤 바로 가족회의가 열렸다. 아비 군의 병실을 지켜 주자는 엄마의 제안에 상민 양이 가장 기뻐했다.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보습학원을 운영하는 곽 씨 부부는 ‘내 아이를 대한민국 1%로 키우겠다’는 욕심뿐이었다.
그러나 딸에게 우연히 사 준 책이 부부는 물론 상민 양까지 바꿔 놓았다.
미소가 프로젝트에서 여는 그림대회 | |
행사 | 사랑 나눔 그림 축제 ‘Drawing A World’(유치원부, 초등부로 나눠 진행) |
시간 | 13일 오전 10시∼오후 4시 |
장소 |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지하철 4호선 대공원역) |
참가신청 문의 | 02-6717-4000, www.f5.or.kr |
참가비 | 5000원. 세계빈곤아동 후원금으로 사용 |
후원 | 동아일보 여성가족부 문화관광부 한국미술협회 |
상민 양은 미래에 대한 꿈을 저당 잡힌 채 노예생활을 하는 제3세계 어린이 얘기를 읽은 뒤 우느라 잠을 설쳤다. 부부는 부끄러워졌다. 이때부터 부부는 욕심을 버리고 상민 양이 불행한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는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상민이네는 그 뒤 매주 한 번씩 가족회의를 연다. 주제는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나눔 활동에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이다. 나눔 저금통과 소액 기부에 대한 홍보, 장애 어린이와 함께한 여름휴가 등 세 가족의 나눔은 모두 여기에서 결정됐다.
강 씨는 “가족 나눔을 하면서 수줍음이 많던 상민이가 부쩍 활발해졌다”며 “공유하는 가치가 생기니 가족이 더 끈끈해지고 모두 같이 커 간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기부, 일회성 벗어나야=나눔과 기부는 이제 한국 사회에서 낯선 말이 아니다. 연말이 가까워 오면 거리 곳곳에 모금함이 설치되고 전화 한 통으로 기부할 수 있는 자동응답전화(ARS)도 넘쳐 난다.
그러나 양적인 팽창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에게 기부는 여전히 일회성 행사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모금액은 2177억 원으로 2004년 1756억 원, 2005년 2147억 원과 비교해 꾸준히 늘고 있다.
하지만 이 가운데 개인 기부 비율은 2004년 22.1%에서 2005년 16.8%, 지난해 16.1%로 오히려 줄고 있다. 나머지는 기업이나 사회·종교단체가 기부했다.
기관이나 단체를 정해 꾸준히 기부하는 사람도 적다.
아름다운재단의 ‘2005 한국인의 기부지수’에 따르면 정기 기부 비율은 20.4%에 그쳤다. 70%를 웃도는 기부 선진국 미국, 프랑스와는 격차가 너무 크다.
▽부모의 나눔이 가장 큰 교육=전문가들은 기부가 문화로 자리 잡도록 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양용희 호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에서는 성장기인 유치원, 초등학교 시기 나눔 교육이 전무하다”며 “기부는 어려서부터 실천하면 습관이 돼 성인이 돼서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의 한 기부조사에 따르면 자원봉사자의 69%, 기부자의 75%가 어린 시절 부모들이 기부하거나 봉사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고 답했다.
가족 나눔은 단지 가족의 이름으로 돈을 기부하는 것이 아니다. 상민이네처럼 가족 구성원끼리 나눔을 실천할 곳을 의논한 뒤 벌이는 기부 활동이다.
굿네이버스 홍선교 자원개발본부장은 “가족 나눔을 통해 부모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고 자녀와의 대화가 느는 모습을 많이 봤다”며 “이런 활동이 지속된다면 훌륭한 가족 유산과 건강한 기부 문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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