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섯번째 앨범 막바지 녹음중…컴퓨터 도움없이 직접 연주
음반이 돈 안 되는 시대, 과거의 명반들이 수십만 원을 호가한다. 그 아이러니 속에서 제일 먼저 꼽히는 음반은 들국화 앨범이다. 이젠 그것 또한 빛바랜 앨범 몇 장으로 남았을 뿐이다. 그들의 노래와 달리 들국화는 이제 ‘행진’하지 않는다. 멤버였던 보컬 전인권은 수인(囚人)이 되었고 기타리스트 최성원은 연예기획사를 꾸려 가며 재기를 꿈꾸고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 들국화 시절을 쓸쓸히 추억하며 록의 현재를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바로 들국화의 드러머였던 주찬권(52) 씨.
그를 만나기 위해 경기 성남시의 지하 연습실을 찾았다. 후미진 골목길에 자리한 연습실에서 그는 막바지 녹음 중이었다. 2년 만의 앨범이었고 그의 이름을 걸고 하는 여섯 번째 앨범이다. 장발의 파마머리에 검은색 선글라스는 여전했다. 연습실 한가운데를 차지한 드럼이 인상적이라 말하자 2년 전 큰마음을 먹고 장만했다고 했다. 무대와는 달리 어둡고 퀴퀴한 공간의 스포트라이트는 드럼이 독식하고 있었다.
그의 앨범은 모두 ‘가내 수공업’으로 만들어졌다. 컴퓨터의 힘을 빌리지 않았고 드럼, 기타, 피아노 모두 직접 연주해 녹음했다. “한번 컴퓨터의 손을 빌리기 시작하면 컴퓨터에 음악이 밀리기 때문”이란다. 심지어 표지까지 직접 디자인했다. 미술을 하는 큰딸의 손을 빌렸다.
이렇게 만들어진 6집엔 ‘코끼리의 비애’ ‘음악은 흐르고’ 등 10곡이 담겨 있다. 음악평론가 송기철 씨의 말대로 ‘조미료를 치지 않은 앨범’이다. 단순한 록비트로 가장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의 음악은 어떠한 수식 없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그중에서도 ‘어이쿠 이런’은 ‘일이 없어 어떻게 해 돈이 없어 어쩌면 좋아 어디선가 웃음소리 들려 어디선가 울음소리 어쨌든 난 내 길을 찾아간다’는 가사가 가슴에 와닿는다. 대리운전사로, 룸살롱의 연주자로 무대가 아닌 생계 전선에 뛰어든 음악 동료들을 생각하며 쓴 곡이다.
○ 최저 생계비도 못 벌지만 탈 없이 살아가는 데 감사
음악을 시작한 지 35년. 처음 드럼 스틱을 잡은 후로 한 번도 다른 머리를 굴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꾸준한 연습으로 만들어진 드럼비트는 머리가 아닌 몸 구석구석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왜 음악을 하지요”라는 물음에 그는 그냥 웃어 버린 걸까.
“음악보다 좋은 잡(job)이 없어요. 그건 보람을 주니까, 기쁨을 주니까, 인생의 끝에서도 어떤 나만의 공간을 주니까. 그리고 다른 건 못하니까…. 허허허”
그의 마지막 꿈은 환갑 즈음에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다. 때론 그 고집, 그 우직함이 어쩌면 록의 가장 진실된 모습은 아닐는지.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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