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팅(이하 수)=김광규 선생님의 시 ‘영산’에서 짜릿한 아픔을 느꼈습니다. 영원히 얻지 못하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인간은 추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광규(이하 김)=시 ‘상수리나무에게’를 보니 사랑의 높이와 넓이, 깊이를 심도 있게 의인화했더군요. 부드러운 서정을 힘 있는 언어로 표현한 게 와 닿았습니다.
▽수=중국에선 시인보다 소설가에게 많은 관심을 보내는 쪽인데 한국에선 시인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더군요. 시인들에게 존경을 보내고, 거리의 게시판에 시구를 걸어 놓기도 하고요. 놀라웠습니다.
▽김=13일 문학포럼에서 중국 작가들의 주제발표를 들었는데 조국애를 강조하는 작가가 적지 않더군요. 중국이 많이 변했다지만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아직 살아 있는 것 아닌가요.
▽수=그럴 수도 있겠지만…. 작가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다릅니다. 저는 꽃 한 송이, 별 하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작가입니다. 제가 열네 살 때 문화대혁명으로 은행장이셨던 아버지가 우파로 몰려 중노동을 하게 됐고 가정이 파탄 났습니다. 저 같은 ‘지식청년’들은 시골로 내몰려 지내야 했습니다. 시를 쓰는 것은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어요. 문혁이 끝날 무렵 ‘한 송이 꽃을 위해 침묵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 그렇지만 살아남아 말하는 것은 더욱 가치 있는 일’이라는 제 시구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걸 알았습니다. 제 시에 곡을 붙여 노래로 불린다는 것도 알게 됐지요.
▽김=노래라면 저작권료도 받았을 텐데요.(웃음)
▽수=작곡가가 알고 보니 지인이어서…. 그렇지만 ‘상수리나무에게’가 고교 교과서에 실려 해마다 인세를 받으니 괜찮습니다.(웃음)
▽김=제 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는 4·19 이후 18년 만에 쓴 작품입니다. 4·19세대에 대한 만가인 셈이지요. 최근 386세대가 저지른 행위가 4·19세대와 똑같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희미한…’에 ‘부끄럽지 않은가’라는 시구가 있는데, 부끄러움은 인간만이 가진 거룩한 양심이라고 생각해요. 부끄러움의 지속력이 이 시와 함께 살아남기를 바랍니다. 이 시는 오래 읽혀 왔지만 젊은 세대도 그렇게 시를, 문학을 계속 읽을지, TV와 만화만 볼지 모르겠습니다.
▽수=이번 행사의 부제가 ‘한강에서 장강까지, 장강에서 한강까지’이지요? 모든 작가는 시냇물이지만, 이것이 모여 거대한 강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이 토지를 적시고 용수를 공급하듯 문학은 사회에 도움 되는 역할을 지속적으로 하리라고 믿습니다.
▽김=개인적 내면에 천착하는 한국문학과 달리 중국의 문학은 씩씩하고 강건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한중 문학인이 교류를 거듭하며 서로의 문학에 좋은 영향을 줄 것으로 믿습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 김광규 시인은
쉬우면서도 쓰기 어렵고 일상적이면서도 비판적인 시를 통해 일상시의 새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 시인. ‘아니다 그렇지 않다’ ‘처음 만나던 때’ 등 9권의 시집을 냈으며 김수영문학상, 대산문학상, 독일 군돌프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 수팅 시인은
사회적 대 주제 대신 개인적인 서정을 강조하는 ‘몽롱시(朦朧詩)’의 주역. 노벨 문학상 수상후보로 꼽히는 베이다오(北島)의 맥을 잇는 대표적인 여성 시인으로 꼽힌다. 영국 일본 독일 프랑스 덴마크 등 여러 나라에서 시집이 번역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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