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기타]와樂!… 와인,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즐겨라

  • 입력 2007년 10월 20일 03시 09분


◇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엘린 맥코이 지음·이병렬 옮김/416쪽·1만8000원·바롬웍스

◇ 랠프 스테드먼의 세계와인기행/랠프 스테드먼 지음·고형욱 옮김/312쪽·2만9000원·예담

오래된 일은 아니다. 어느 순간 포도주는 사라지고 와인만 남았다. 등급 좋은 와인 서너 개쯤은 이름을 읊어야 하고, 어떤 음식과 와인의 궁합이 맞는지도 따진다.

현재 수입 와인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80% 이상. 올 상반기(1∼6월) 와인 수입액만 7000만 달러를 웃돈다(한국무역협회 자료). 지난해 수입총액이 8860만여 달러였다니 엄청난 증가세다.

특이한 건 와인을 대하는 이중적 태도다. 본 적도 없는 그랑크뤼급 와인을 논하며 격식을 차린다. 그런데 막상 빈티지나 산지(産地)의 특성,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 품종의 맛 차이에는 별로 관심 없다. 와인을 즐기는 게 아니라 트렌드에 빠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는 세계가 왜 이렇게 와인에 열광하는지 실마리를 제공한다. ‘와인평론가…’는 와인 평론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로버트 파커(60)의 평전. 1977년 창간한 와인 정보지 ‘와인 애드버킷(Wine Advocate)’으로 와인계의 절대 권력이 된 그를 통해 와인산업의 이면을 살핀다.

19세 때 싸구려 와인을 퍼마시고 밤새 속을 게워 낸 파커. 대학 시절 짧은 프랑스 여행에서 일생일대의 조우를 한다. “콜라가 비싸서 마신 한 잔의 드라이 와인”이 그의 미래를 결정지은 것. 하지만 당시 와인업계는 생산자 시각의 평가가 지배하던 시절. “제대로 알고 적절한 값에 와인을 먹자”는 소박한 바람으로 와인의 세계로 뛰어든다.

수많은 와인평론가 중 파커가 각광받은 건 그의 타협하지 않는 공정성 덕분이었다. 평가하는 와인은 절대 협찬받지 않는다. 어쩌다 업자와 식사해도 밥값은 자비로 낸다. 쉼 없이 포도밭을 찾고 하루 30∼40병씩 맛을 보는 성실함. 뭣보다 첫사랑 퍼트리샤와 평생 해로하듯 와인을 사랑했다. 진실한 한우물 파기는 팬들을 사로잡았다.

그렇다고 이 책이 파커에 대한 찬양 일색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오래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라고 지적한다. 극단적인 점수제는 개인의 취향을 앗아갔다. 적정한 가격이 모토였으나 그가 칭찬하면 금값이 됐다. 파커의 비판에 농장이 문을 닫았다. 많은 업적을 이룬 황제였으나 “이후 또 다른 황제의 출현은 원하지 않았다.” 원제 ‘The Emperor of Wine’(2005년).

주류 와인산업계 얘기가 딱딱하다면 ‘랠프 스테드먼의 세계와인기행’이 대안이다. 스테드먼은 순수 애주가로 와인을 좋아하는 영국 삽화가. 와인 산지를 돌며 쓴 기행문이지만 정보보단 와인을 통해 바라본 세상에 초점을 맞췄다.

예를 들어 샴페인의 고장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서 ‘동 페리뇽’을 마셨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인간이 상상하는 어떤 색보다 풍요로운” 포도밭에 눈길을 준다. 와인 자체보단 오비예 수도원의 겸손한 창고지기였던 인간 동 페리뇽의 얘기에 매혹된다. 캘리포니아에서도 벌에 쏘여 가며 직접 손으로 포도주를 담그는 털털한 와인 제조업자 빌 젱킨스가 관심을 끈다.

저자는 어떤 와인이 고급인지에 관심이 없다. 세계인의 입맛에 맞추다 와인이 개성을 잃는 게 안타깝다. 저렴한 동네 와인이라도 고장의 특색이 담긴 와인, 그걸 즐기는 사람이 중요하다. 저자가 그린 삽화 역시 와인과 대지를 사랑한 집시의 향취가 풍만하다.

역시, 혼자 마시는 ‘샤토 무통 로칠드’보단 함께 잔을 부딪치는 하우스와인이 근사한 법. 원제 ‘Untrodden Grapes by Ralph Steadman’(2005년).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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