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건축에 관심이 많은 프랑스의 지리학자 건축학자 도시계획학자 7명이 한국 일본 중국 홍콩의 고급 호텔에 주목했다. 동아시아의 고급 호텔은 언제 어떻게 생겼고, 어떤 사람이 이용하며, 그 이면엔 어떤 정치적 사회적 의미가 깔려 있는지 그리고 그 호텔이 어떻게 역사와 문화로 형성되어 왔는지를 들여다봤다.
이방(異邦)의 학자들이 동아시아의 고급 호텔을 면밀히 관찰하다니, 그 자체만으로도 이 책은 흥미 만점이다. 이 책을 책임 편집한 발레리 줄레조는 프랑스에서 한국의 아파트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고 올해 초 국내에서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책을 출간한 바 있다.
이들이 동아시아의 고급 호텔에 주목한 것은 이들 국가의 근대화 과정이 호텔에 상징적으로 압축되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것은 특히 고급 호텔의 탄생 배경에 잘 나타난다.
19세기 말∼20세기 초 한국 중국 일본 앞에는 서구식 근대화가 놓여 있었다. 상황은 서로 다르지만 근대화를 추진하기 위해선 서구인들이 들어와야 하고 그들을 위한 숙박시설이 필요했다. 중국과 한국의 경우 숙박시설의 건립은 제국주의 침략과 궤를 같이한다. 2차 아편전쟁 직후인 1863년 영국에 의해 영국 조차지였던 중국 톈진(天津)에 들어선 리순더 호텔, 1914년 조선총독부가 서울 한복판에 지은 조선호텔이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 1889년 일본 메이지(明治)정권이 도쿄(東京)에 세운 궁전 분위기의 데이코쿠(帝國) 호텔은 제국주의에 대한 일본의 야망을 보여 주는 상징물이었다. 당시 권력자들은 이 고급 호텔이 무조건 권력의 장소와 가까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 호텔은 도쿄의 중앙 관청가 한가운데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동아시아 고급 호텔 탄생의 정치적 사회적 배경을 살펴본 저자들은 호텔 100년의 역사와 현재의 의미로 눈길을 돌린다. 한국 호텔의 역사를 바라보는 이들의 시각은 비판적이다. 급격한 경제 발전 과정에서, 국가 권력이 일방적인 도시 계획에 따라 재벌과 손잡고 외국의 모델을 무비판적으로 수입해 호텔을 지었다고 지적한다.
저자들은 한국 호텔의 공간 구성에도 관심을 갖는다. 피트니스클럽, 최고급 음식점과 제과점, 꽃집, 나이트클럽…. 이 같은 서비스는 상류층 사교 문화를 위한 것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한다.
동아시아 호텔의 역사와 사회적 의미, 각국 호텔 문화의 차이점 등 이 책은 유익한 대목이 많다. 베트남 인도 싱가포르 등지의 호텔에 대한 연구가 빠졌지만 호텔을 통해 우리의 근현대사를 다시 한 번 성찰하게 해 준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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