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사 언니가/내 머리를 너무 짧게 잘라/속상해//긴 생머리가/바닥에 떨어질 때마다/울고 싶었지//집에 오자마자/빨리 자라라고/물뿌리개로/머리에 물을 흠뻑 주었어//머리를 감고 나니까/머리에/파릇파릇한 잎이랑 줄기가/쑥쑥 자라는 것 같아’(‘머리야, 빨리 자라라’)
긴 머리가 단정하지 않아 보인다고, 엄마가 확 잘라 버리라고 했나 보다. 그렇지만 ‘긴 생머리’랑 ‘미인’이 같은 말인 여자 아이에게는, 잘린 머리가 우수수 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눈앞이 캄캄해진다. 거울을 봤더니 갑자기 못생긴 아이가 돼 버린 것 같다. 다시 머리를 길러야겠다. 어떻게 해야 빨리 자랄까? 머리에 물을 줘야겠다! 그럼 나무처럼 머리가 쑥쑥 자라겠지!
아이들만 할 수 있는 이 말 안 되게 귀여운 생각. 흥겹고도 꾸밈없는 시어로 풀어내니 더욱 웃음이 난다. 또 다른 시편 ‘방귀’. ‘엉덩이에도 얼굴이 있답니다/풍선 부는 입처럼/나팔 부는 입처럼/아주 뚱뚱한 두 볼 사이에/쏙 들어간 작은 입이 하나 있지요//기분이 좋아지면/그 입은 힘차게 소리지른답니다/뿌웅/배 속이 시원해지면 더 좋아서 노래도 부른답니다/뽀오옹∼/안 좋은 일이 있으면/비웃기도 한답니다/피식―’ 시인만이 듣고 표현할 수 있는 이 생리현상의 사랑스러움!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미당문학상 등을 받은 김기택 씨는 무섭도록 세심한 관찰력으로 포착한 시편들로 잘 알려진 시인이다. 그가 아이들을 위해 처음으로 쓴 동시는, 담백한 언어로 쓰였으면서도 시인 특유의 섬세한 시선이 잘 살아 있다. 대부분의 시는 ‘몸’에 관한 것들. ‘산에 올라갔다 똥이 마려워/풀숲에 똥을 누니//똥에서 풀 냄새가 나/꽃 냄새/흙 냄새도 나’(‘산에서 똥을 누면’ 중에서) ‘드르렁드르렁/오토바이는 아빠 콧구멍으로/요란한 소리를 내뿜고 있었어//아빠 콧구멍을 막으니까/컥, 컥, 컥, 오토바이는 겨우 멈추었어’(‘코 고는 아빠’ 중에서)
딸꾹딸꾹 딸꾹질, 꼬르륵 배곯는 소리, 에에에에―취! 재채기 소리…. 우리 몸이 온갖 소리를 내는 악기라는 것을, 시인의 예민한 귀가 붙잡아 알려 준다. 그 소리 하나하나가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엄마가 읽어 주다가 먼저 웃음보를 터뜨릴 듯하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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