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해방사 중도로 읽기… ‘한국해방 3년사’

  • 입력 2007년 10월 20일 03시 13분


◇ 한국해방 3년사/이완범 지음/1만원·248쪽·태학사

남북 관계 연구자들 사이에선 1990년대 ‘구부러진 막대’의 비유가 자주 인용됐다. 1980년대까지 북한에 대한 적대적 연구로 인해 우로 휘어진 막대를 바로잡기 위해선 다시 왼쪽으로 휘어줄 필요가 있다는 논지였다. 북한체제를 외부의 과점이 아니라 그 내부의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내재적 접근법’을 옹호한 논리였다.

2000년대 뉴라이트의 역사관은 어쩌면 정확히 그 반대편에 위치한다. 좌파이론가들의 대중적 득세로 미국과 남한이 분단의 원흉인 반면 북한은 자주적 통일세력이라는 좌편향의 인식이 확산되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 최신 연구 성과를 토대로 남한은 ‘성공한 역사’이고 북한의 ‘실패한 역사’임을 부각하기 때문이다.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그런 흐름의 교집합에 속한다. 좌편향적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우편향적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에 모두 저자로 참여했던 그는 이런 흐름에 대한 변증법적 통합으로 ‘막대 바로세우기’를 시도한다.

미국이 주도한 38선의 분단선 획정과 신탁통치 추진은 원자폭탄 투하 전까지 소련의 세력권에 들어갈 공산이 높았던 한반도에 세력 거점을 마련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었다. 반면 소련은 가만히 뒀으면 자신들의 세력권이 됐을 한반도를 통째로 먹기 위해 분단 반대라는 명분 뒤에서 북한에 사실상 소련체제를 재빨리 이식하고 반대세력을 제거해 나갔다.

미국이 노골적이고 서툴렀던 반면 소련은 좀 더 치밀하고 은밀했을 뿐이다. 미군이 점령군이란 표현을 쓰고 직접적 군정을 펼칠 때 소련은 해방군의 탈을 쓰고 민정이란 이름 아래서 사실상의 군정통치를 실시했다. 그러나 철도, 전화, 통신을 두절함으로써 사실상 남북한의 단절을 먼저 착수하고 완료한 것은 소련군이었다.

저자는 이처럼 외세에 의해 주어진 분단을 고착시킨 것은 한국인의 역량 부족 때문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오스트리아처럼 내부 단결로 통일을 이뤄내지 못했고 김일성과 이승만이란 극좌와 극우의 집권으로 귀결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미적 이승만과 자주적 김일성이란 일반의 통념은 잘못이다. 김일성은 철저히 스탈린 기획의 작품인 반면 이승만은 미국과 충돌하며 스스로의 의지를 관철했다.

저자는 우리의 역사를 오욕의 역사로 자학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이를 성공신화로 자만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21세기 ‘선진화된 통일국가 수립’이 이뤄지기까지는 성공이란 표현을 자제해야 한다며.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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