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난에 허덕이는 '호돌이 태권도장' 사범 무열(이민기), 게으른 만화가게 주인 용수(류승수) 등 언뜻 보기에도 '덜 떨어진' 세 남녀가 샴쌍둥이처럼 우루루 몰려다닌다. 바로 KBS2 '얼렁뚱땅 흥신소'(월·화 밤 9시 55분)에서다. 지난 8일 첫 방송한 이후 매주 월·화 SBS '왕과 나', MBC '이산' 등 대하사극에 끼여 시청률은 한 자릿수. 하지만 '사극 피로'에 시달린 시청자들이 간만에 개성 있는 드라마를 만났다는 평이다.
감히 모방하기 힘든 이들 캐릭터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띠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예지원(34). 21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촬영장에서 만난 그는 '역시 그답게' 머리에 분홍 꽃을 달고 나타났다. 다른 드라마에 비해 '양념'처럼 취급되는 로맨스 장면을 찍다 왔단다. 극중 배역과 달리 "점도 볼 줄 모르고 명품도 안 밝힌다"는 걸 빼면 희경은 그자체로 예지원이었다.
"그냥 점쟁이 역할이었다면 안했을 거예요. 어릴 적 신들렸다가 왕따 당하고 신기가 사라지자 되레 귀신을 무서워하게 됐죠. 한마디로 신들리다 만 짝퉁 점쟁이라고나 할까. 이 캐릭터 정말 예술 아니에요? 예술? 다른 건 몰라도 내가 배역 보는 눈은 있다니까요."
'귀여워'의 순이, '올드미스다이어리'(2006)의 미자, '죽어도 해피엔딩'(2007)의 지원 등 최근 출연작을 보면 배역을 고르는 그녀의 감식안은 참 독특하다. 오죽했으면 '4차원 배우'라는 별명이 붙여졌을까.
얼마 전 MBC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천연덕스럽게 부른 샹송 '빠로레 빠로레'는 인기 검색어에 올랐다. 그는 "그 후로 결혼식에서 축가로 불러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며 "남녀가 싸우는 내용의 노래인데 그럴 순 없다며 거절했다"고 말했다.
'얼렁뚱땅 흥신소'에는 왕들의 권력 암투도 남녀간 삼각관계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제작진의 말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처럼 보여도 알고 보면 상처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이제까지 황금을 찾기 위한 좌충우돌이 주를 이뤘다면 앞으론 각자의 상처들도 조심스럽게 들춰질 예정이다.
"대본을 보면 지문이 '너무나 할일이 없어서 앉아 있는 그들' '쮸쮸바나 먹고 있는 그들'. 이런 식이에요. 솔직히 남들에게 보여주기 창피한 사람들이죠. 그런데 너무 당당해요. 독특하지만 각자의 진솔한 삶이 담겨 있으니 좋아하는 게 아닐까요? 비록 시청률은 낮지만… 그래도 드라마는 무한 재방을 하니 언젠가는 봐주겠죠."
염희진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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