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가까이 살고 싶어서 10년 넘게 살던 보금자리를 떠났다. 출근길은 고생스러워졌지만 맑은 공기를 마시고 풀벌레 우는 소리를 들으며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게 됐다. 자연과 호흡할 수 있다면 다른 것은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살다 보니 자연보다 더 큰 기쁨을 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웃이다. 아파트에 살 때는 잊고 있던 사람 냄새다.
아파트에서는 우연히 만나 인사를 하는 듯 마는 듯하며 사는 사람들이 정을 나누고 삶의 기쁨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이들은 타운하우스에 산다. 전원주택도 아니고 아파트도 아닌 주거 형태인 타운하우스는 일상을 변화시켰다. 주민 공동체가 생기고 그 모습도 날로 달라지고 있다.
경기 파주 출판단지 안에 있는 헤르만하우스와 성남 판교 인근의 린든그로브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헤르만하우스는 14개 동 137채다. 한 가구가 3개 층을 사용하며 전용 면적은 165㎡(50평)다. 린든그로브는 4층짜리 건물 3개 동 52채다. 214㎡(65평형), 247㎡(75평형), 287㎡(87평형)로 구성돼 있다.》
○ 이웃의 부활
린든그로브 101동 주민들은 13일 단체로 1박 2일 지방 여행을 다녀왔다. 101동 주민인 이병채 온양팔레스호텔 사장이 이웃들을 초대해 이뤄진 여행이었다. 숙박비와 부대 비용은 모두 초청자가 부담했다. 이 여행에는 16가구 중 13가구가 참가했다. 린든그로브 주민들은 주말이면 부부 동반으로 골프를 즐긴다. 마음 맞고 시간 맞는 부부들끼리는 해외여행도 다녀왔다.
헤르만하우스에 사는 방송인 전지나 씨의 아들은 태어난 지 10개월밖에 안 됐지만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주민들은 전 씨의 아들을 보면 “헤르만하우스에서 태어난 첫 번째 아기”라며 반가워한다.
아이들은 장난감을 놀이터에 둔 채 그냥 집에 들어가고, 집 앞에 있는 자전거도 별도의 잠금장치 없이 세워 둔다. 외부와는 차단되고 이웃들끼리 서로 잘 알고 지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주민들은 설명한다.
헤르만하우스 주민들은 한두 달에 한 번씩 주말 저녁에 가든파티를 열어 정을 나눈다. 분기별로 중고 장터를 열고 필요한 물건도 교환한다.
이웃이 타운하우스에서 부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린든그로브에 사는 김조영 변호사는 “자연과 가까이 살면서 사람들이 삶의 여유를 찾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커뮤니티가 작아서 서로 모른 체하고 살 수 없는 것도 이유다.
박세호 경기신문 대표이사는 “사는 사람이 얼마 안 되기 때문에 얼굴을 마주칠 기회가 많고, 주민들 수준이 비슷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쉽게 다가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얼굴이 알려졌거나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사람이 많다. 린든그로브에는 LG그룹 강유식 부회장 등 기업 최고경영자와 병원 원장, 변호사 등이 산다. 헤르만하우스에는 방송인 송승환 씨와 방송인 전지나 씨 등 문화 예술계 인사가 많이 산다.
○ 집이 바뀌니 일상이 바뀐다.
“여기 사람들은 사교육을 선호하지 않는다. 동네 분위기가 그렇다. 대신 많이 놀게 한다.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도 있지만 안 다니는 친구들이 더 많다.”
헤르만하우스 주민 이경원 씨의 설명이다.
부부의 일상도 달라졌다. 서울 강남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오세민 원장 부부는 지난해 1월 린든그로브로 이사 온 뒤부터 오전 5시에 일어난다. 두 사람은 49㎡(15평) 크기의 개인 정원과 132㎡(40평) 크기의 공동 정원에 심은 꽃에 물을 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주말에는 정원에 심을 꽃씨를 구하느라 꽃 시장을 함께 다닌다.
전지나 씨 부부는 서울의 아파트에서 살 때는 주말이면 쇼핑과 외식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요새는 주말 저녁에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한다. 전 씨는 “친구들을 초대하면 처음에는 파주란 말에 선뜻 엄두를 못 내지만 한 번 온 사람은 또 오려고 한다”고 말했다.
타운하우스는 주차 스트레스도 없다. 린든그로브는 각 세대 별로 현관 앞에 한 대, 지하 주차장에 두 대를 주차할 수 있다.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되는 것도 아파트와 다른 점이다. 단지 안 사람들끼리는 서로 소통하고 지내지만 단지 밖의 사람들과는 단절이다. 타운하우스만의 커뮤니티라고나 할까. 커뮤니티의 회비 격인 관리비는 비싼 편이다. 린든그로브는 관리비가 100만 원 정도 된다. 가스비와 전기료를 합하면 150만 원이 넘는다. 헤르만하우스는 관리비가 14만 원 선이고, 전기료와 가스비를 합하면 50만 원 정도 된다. 돈을 주고 환경을 산다는 점에선 여느 주거지역과 다르지 않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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