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까지 15년 동안 미국인 앤 도지 씨는 30여 명의 의사를 만났다. 30대 여성인 도지 씨는 음식을 먹고 나면 구역질과 통증이 심해 토하는 증상을 앓았다. 어떤 의사는 폭식증과 거식증을 동반한 식이장애라고 말했다. 내분비학 혈액학 전염병학 정신의학 의사까지 모두 만났다. 그런데도 증상은 날로 악화됐다.
의사들은 시리얼처럼 소화 잘되는 전분 위주로 하루에 최소 3000Cal를 섭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구역질과 구토가 계속됐다. 한 의사는 과민성대장증후군이라고 진단했다. 도지 씨는 억지로 3000Cal를 먹는다고 말했지만 의사들은 체중이 계속 주는 걸 보고 그가 거짓말한다고 생각했다.
2004년 도지 씨는 미국 보스턴 베스 이스라엘 디커니스 메디컬센터의 마이런 팔척 박사를 만났다.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다른 의사들처럼 그간의 진료기록을 훑고 비슷한 치료법을 내놓을 것이 뻔했다. 그런데 달랐다. 팔척 박사는 진료기록을 전혀 보지 않은 것처럼 묻고 듣고 관찰했다. 환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팔척 박사는 도지 씨가 실제로 3000Cal를 섭취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검사를 면밀히 한 결과 그가 면역장애인 소아지방변증(곡물 주요 성분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곡물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환자에게 이전에 만났던 의사들은 곡물을 섭취하라고 했던 것이다. 하버드대 의대 교수인 저자는 말한다. 환자의 이야기에서 등을 돌리는 순간 우리는 진정한 의사가 아니라고.
이 책은 환자를 치료할 때 의사 머릿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며 어떤 사고 과정을 거치는지, 또 거쳐야 하는지 알려 준다. 저자는 혈액질환 암 에이즈 치료에 저명한 의사다.
캐나다 핼리팩스 응급실의 팻 크로스케리 박사가 털어놓았다. 군살 없는 몸매와 건강을 자랑하는 산림감시원이 가슴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 우려할 만한 부분이 없다고 판단했다. 다음 날 그 환자가 심근경색으로 다시 병원에 왔다는 소식을 들은 크로스케리 박사는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박사는 환자에게서 협심증 징후를 느꼈지만 환자가 워낙 건강해 보여 다른 가능성을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다.
부정적인 선입견도 위험하다. 캐나다 토론토대 도널드 레델마이어 박사는 인턴에게서 혼자 사는 70대 노인에 대해 보고받았다. 남루한 행색과 술 냄새, 매일 저녁 럼주를 한 잔씩 즐긴다고 털어놓았다는 노인에게서 보이는 오직 하나의 가능성은 알코올성 간경변증이었다.
이런 환자를 대할 때 어떤 감정이 드는지 박사는 솔직히 말한다. “혐오스럽지요.” 인턴은 짜증을 냈다. 박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편견을 버리고 다양한 검사를 했다. 폐와 간 질환을 유발하는 희귀 유전질환이 발견됐다. 더구나 환자는 알코올중독자가 아니었다.
이처럼 이 책에서는 유명 의사들이 오진의 경험까지 솔직히 털어놓는다. 환자와의 만남부터 진단을 내리기까지 의사들한테서 직접 얘기를 듣는 것처럼 생생하다.
의사들을 위한 책 같지만 사실 환자와 환자의 가족 등 병원을 찾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병원을 찾아 성의 없거나 엉뚱한 진단을 하는 의사에 대해 의심을 품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저자는 환자와 환자의 가족이 의사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고 적극적으로 대화를 청할 때, 의사의 사고방식에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원제 ‘How Doctors Think’(2007년).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도움되는 또 다른 책들▼
◇환자와의 대화/브라이언 버드 지음·이무석 옮김/416쪽·2만5000원·도서출판 이유
◇일방통행하는 의사, 쌍방통행을 원하는 환자/토르스텐 하퍼라흐 지음·백미숙 옮김/240쪽·1만2000원·굿인포메이션
‘닥터스 씽킹’처럼 의사와 환자의 대화를 강조한 책들이 잇따라 나왔다. ‘환자와의 대화’는 밖으로 드러난 증세 뒤에 숨어 있는 마음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의사가 어떻게 환자와 대화해야 하는지 방법을 안내한다. 환자의 심리를 이해하고 대화 기법을 익히기 위한 다양한 사례가 눈에 띈다. ‘일방통행하는…’은 실제 의사가 환자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환자는 어떤 대화를 원하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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