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학계는 다라니경의 제작 시기를 경주 불국사 석가탑이 건립된 8세기 중반 이전이라고 봤다. 그러나 1966년 석가탑에서 출토된 묵서지편(墨書紙片·문서 뭉치) 일부가 2005년 중수기(重修記·탑을 보수한 기록)로 밝혀진 후 중수기에 1024년 탑을 보수하면서 다라니경을 넣었다는 기록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학계는 혼란에 빠졌다. 다라니경 제작연대가 일본 목판본인 백만탑다라니경(770년 제작)보다 늦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7일 박물관 소강당에서 '석가탑 발견 유물 조사 중간 보고회'를 열었으나 이 논란에 종지부를 찍진 못했다. 박물관의 의뢰를 받은 노명호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와 이승재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는 이날 "묵서지편의 판독 결과 다라니경 제작연대는 학계 통설처럼 8세기 중반 통일신라시대일 가능성과 11세기 초반 고려시대일 가능성 둘 다 있다"고 밝혔다. 묵서지편만으로 다라니경의 제작연대를 못 박기 힘들다는 것.
▽통일신라시대 제작설=판독 결과에 따르면 고려 현종 15년(1024년) 석가탑을 보수하면서 통일신라 때 넣은 다라니경을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정종 4년(1038년) 보수 땐 "사리를 안장하되 전에 있던 물건들은 그대로 뒀다(前物不動)." 사리장치엔 손을 대지 않았다는 뜻인데 국보 다라니경은 금동제사리외함 안에서 나왔고 고려 시대에 넣은 묵서지편은 외함 바깥에서 출토됐다. 국보 다라니경이 통일신라시대 유물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고려시대 제작설=1038년 중수형지기(重修形止記·탑 보수 때의 전말을 적은 기록)엔 "무구정광다라니경 1권을 탑에 넣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교수는 "무구정광다라니경 1권" 뒤 글자가 지워져 있으나 문맥상 '넣다'는 의미의 '納(납)' 자로 추정했다. 중수형지기에 따르면 1036년 경주 일대에 큰 지진이 일어나 석가탑이 무너질 위험에 처했다. 판독 결과 현종 15년 중수기는 1024년 것을 1038년에 다시 쓴 필사본으로 확인됐다. 이 교수는 "지진으로 종이문서까지 심각한 손상을 입었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다라니경도 지진으로 파손돼 새로 만들어 넣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현존 다라니경의 제작 시기는 11세기 초로 늦춰지게 된다.
그러나 노 교수는 "설사 고려 때 넣은 것이라 할지라도 신라 때 인쇄했던 것을 소장하다가 다시 집어넣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박물관의 석가탑 발견유물 조사위원회 자격으로 보고회에 참석한 천혜봉(전 문화재위원) 성균관대 명예교수, 박상국 문화재위원 등 서지학자들은 다라니경의 서체와 종이 재질로 볼 때 통일신라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묵서지편으로 새로 밝혀진 사실들=1966년 석가탑에서 발견된 이후 41년 만에 판독된 묵서지편으로 석가탑이 건립 시기, 보수 이유 등 새로운 사실을 밝혀졌다. 1038년 중수형지기에 따르면 석가탑은 통일신라 혜공왕(756~780)의 태자 시절에 완성됐다. 적어도 765년 이전에 완성됐다는 것이다. 또 1036년 지진으로 불국사 곳곳이 무너졌고 석가탑 보수 완료를 앞둔 1038년 초 또 한 번의 지진이 일어난 사실도 이번에 확인됐다. 또 묵서지편에는 수많은 이두가 기록돼 문자발달사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윤완준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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