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서 붕괴 ‘서원 원형’ 한국이 보존”

  • 입력 2007년 10월 30일 03시 02분


중국은 최근 국학열이 불면서 문화혁명 때 파괴된 서원 복원에 힘을 쏟고 있다. 악록서원에서 남쪽으로 190여 km 떨어진 후난 성 헝양(衡陽) 시에서 지난해 복원한 석고(石鼓)서원 앞 광장에 세워진 일곱 선비의 동상.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주희이고 그 뒤가 주돈이, 왼쪽은 장식, 오른쪽은 주희의 사위였던 황면재 등이다. 헝양=권재현 기자
중국은 최근 국학열이 불면서 문화혁명 때 파괴된 서원 복원에 힘을 쏟고 있다. 악록서원에서 남쪽으로 190여 km 떨어진 후난 성 헝양(衡陽) 시에서 지난해 복원한 석고(石鼓)서원 앞 광장에 세워진 일곱 선비의 동상.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주희이고 그 뒤가 주돈이, 왼쪽은 장식, 오른쪽은 주희의 사위였던 황면재 등이다. 헝양=권재현 기자
중국 후난(湖南) 성의 성도 창사(長沙) 시에 있는 악록(岳麓)서원은 한국의 도산서원에 해당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4000여 곳에 이르렀다는 중국 서원 중에서 백록동(白鹿洞), 숭양(嵩陽), 응천부(應天府)서원과 함께 ‘천하 4대 서원’으로 꼽힌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200여 서원 중 국가유적으로 지정된 3대 서원 중 하나이며 중국 서원 중 유일하게 석박사 학위 과정을 둔 곳이다. 이 건물에선 후난대 역사 및 철학과 대학원 수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장서각인 어서루 2층은 대학원 도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악록서원에서 23, 24일 한국과 중국 등 4개국 연구자들이 모여 국제학술회의를 열었다. 국민대 한국학연구소와 악록서원이 공동 개최한 이 회의는 지난해 11월 서울 대회에 이은 2차 회의다. 지난해에는 발표문이 6편이었으나 이번 대회엔 31편이 나와 중국과 한국 서원의 차이점이 뚜렷하게 부각됐다.

양국의 서원을 비교 분석한 여러 발표문 중에서 가장 의외의 사실은 8세기 당(唐)대에 시작된 중국 서원에 비해 16세기 서원문화가 이식된 한국 서원이 더 전통적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 살아남은 47개의 서원이 원형을 보존했으나 중국의 서원은 청 말에 대부분 서양식 학교로 바뀌었고 그나마 문화혁명을 거치며 대다수가 파괴됐다. 악록서원 건물도 대부분 중-일전쟁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980년대 복원한 것이다.

한국과 중국의 서원이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중국 서원이 관학화하면서 자율성을 상실한 반면 한국 서원은 독립성을 유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중국의 서원이 시대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했으나 한국 서원은 자기 혁신에 둔감했다는 이야기도 된다. 중국 서원은 명청대에 이르러 불교와 도교, 심지어 무학(武學)까지 가르치고 교육 대상도 사대부 출신이 아닌 일반 상민으로 확대했다.

이런 차이는 ‘강학(講學)’ 중심의 중국 서원 대 ‘제향(祭享)’ 중심의 한국 서원이라는 서로 다른 특징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국 서원도 제향을 강조하긴 했으나 그 중심이 공자였던 반면 공자 사당을 별도로 짓지 않았던 한국 서원은 지역 향사(鄕士)의 제향에 중심을 뒀다. 서원 구조도 중국은 장서각이 가장 큰 건물로 맨 뒤에 있으나 한국에선 사당이 맨 뒤에 있는 게 보통이고 장서각은 미미하다.

이런 대조적 면모는 서원문화를 현대화하려는 양국 학자에게 일종의 ‘거울효과’를 낳고 있다.

중국 학자들은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율성 회복과 서원의 전통 회복을 통한 관광자원화에 관심을 보였다. 악록서원의 주한민(朱漢民·53) 원장은 “서양의 대학 전통과 대별되는 동양의 서원 전통을 새로 확립하기 위해선 자율성 확보가 필수”라며 “서원문화의 대중화를 위해 2009년까지 서원박물관을 건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악록서원은 중국의 국학열(國學熱)을 타고 연간 관광객이 60만 명을 넘어섰다.

한국 학자들은 강학 기능의 현대화에 관심을 보였다. 서원학회 회장인 정만조(61) 국민대 교수는 “명상 공간으로 활용되는 사찰을 비롯해 교회나 성당의 기도원이나 수도원처럼, 관광 대상에만 머물며 ‘죽은 공간’이 된 서원을 인간 본성 회복에 도움을 주는 ‘살아 있는 공간’으로 되살리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리차이둥 교수“마오쩌둥도 서원 중시… 석학 양성은 무시”▼

“마오쩌둥(毛澤東)도 서원문화를 중시했지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습니다. 독서와 토론을 통한 학생들의 자율적 학습 못지않게 그들을 이끌 대가(大家)가 중요했는데, 마오는 전자만 강조하고 후자는 간과했습니다.”

마오쩌둥의 고향인 후난(湖南) 성 한복판에서 열린 이번 학술회의에서 리차이둥(李才棟·73·사진) 장시(江西)교육학원 교수는 거침없이 마오를 비판했다. 말기 암 환자인데도 학술대회를 위해 병실을 나선 그는 죽음을 초연한 학문적 열정으로 중국 서원 연구의 10대 과제를 제시해 참가 학자들을 숙연하게 했다. 리 교수는 스승의 가르침에만 의존하는 사수(師授)학교, 출판문화의 발달에 따른 독서학교, 서양근대교육체제를 도입한 반급수과(班給授課)학교라는 3단계 중국학교사를 펼친 대표적 서원 연구가다. 서원은 독서학교에 해당한다.

문화혁명 때 고초를 겪었던 리 교수는 “동아시아 전통교육체계에선 15세를 기준으로 소학(小學)과 대학(大學)의 구분만이 있었을 뿐 중학(中學)의 개념은 없었다”며 “오늘날 대학이 진정한 대학이 되려면 학문의 대가를 키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어쩌면 생전 마지막이 될지 모를 그 모습을 담기 위해 한국과 중국의 학자들은 학회 마지막 날 만찬장에서 환한 미소로 작별 인사를 고한 이 노학자에게 아낌없는 기립 박수를 보냈다.

창사=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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