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는 세계를 정복했던 위대한 인물의 생애를 그린 영화다. 알렉산더는 강하고 포악스러운 부모와의 갈등 관계 때문에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다. 서로 멸시와 증오, 신체적 폭력도 마다하지 않는 부모의 틈바구니에서 자란 알렉산더는 부모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는 아이였다. 어머니 올림피아스는 남편인 필리포스 왕을 경멸하며 자식인 알렉산더를 제우스의 아들이자 전설적인 영웅 ‘아킬레스’라 부르면서 아들을 통해 정치적 야망을 이루고자 한다.
알렉산더는 아버지를 경쟁자이면서도 동일시하고 싶은 대상으로 여겼다. 그는 야생마를 길들여 환호를 받는 자리에서 여러 사람에게 “아버지가 바라는 왕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사주로 살해된 아버지를 이어 왕으로 추대된 알렉산더는 왕좌를 훔쳤다는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꼈다.
어머니는 평소 “넌 내 모든 걸 닮았어. 난 너만을 위해서 살아왔다”면서 자신과 알렉산더를 동일시했다. 알렉산더는 자신을 삼켜버릴 것 같은 어머니를 두렵게 느꼈다. 그는 애증의 대상인 어머니로부터 영원히 벗어나기 위해 긴 여정의 세계 정복에 나선다.
알렉산더는 군대를 이끌고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듭한다. 아마도 그가 정복하고 극복하고자 했던 것은 아버지라는 거대한 산이었을 것이다. 알렉산더가 아내로 맞이한 이방의 여자는 어머니 올림피아스와 비슷한 다혈질이었다. 그는 “내가 당신을 취한 건 당신에게서 어머니를 보았기 때문이야”라고 말했다. 알렉산더는 심리적으론 어머니로부터 결코 도망칠 수 없는 무력한 소년이었다.
이처럼 부모가 불안과 갈등의 근원이 되면 자녀는 끊임없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여자 아이의 경우 엘렉트라 콤플렉스)라고 일컫는 갈등을 극복하려는 삶을 살게 된다. 부모가 자신을 보호해 주는 안전지대가 되어 주지 않으면 스스로 강해져 자신을 보호하려는 강한 욕구가 생긴다.
소아 청소년기 정신장애를 진단하는 기준 가운데 ‘부모·자녀 관계 문제’라는 항목이 있다. 아동, 청소년기에 겪게 되는 정서, 품행, 성격 문제에는 부모·자녀 관계갈등이 숨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가 서로 물과 불 같은 관계, 험담하는 사이가 아니었으면 알렉산더는 세계 정복에 집착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는 내면의 갈등을 극복하려고 용감하게 싸움으로써 위대한 왕이 되었지만, 늘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서 “난 쉴 곳이 없다. 안식처를 찾아서 세상 끝까지 갈 거야”라고 말했다.
성인이 되어 이성이나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방식에서도 부모와 맺었던 관계 양상이 미묘하게 되풀이되어 나타난다. 알렉산더가 대제국을 건설했지만 ‘나는 실패자’라고 울부짖었던 것처럼 자녀가 겉으론 성공한 사회인이 되더라도 내면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 있다. 자녀가 주변 사람과 조화를 이루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
신민섭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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