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전의 재해석, 한국발레 큰 화두 던졌다

  • 입력 2007년 11월 2일 03시 03분


춘향(노보연)과 이도령(이원철)의 낭만적인 파드되(2인무). 김재명 기자
춘향(노보연)과 이도령(이원철)의 낭만적인 파드되(2인무). 김재명 기자
포킨의 발레 ‘춘향’을 보고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세 편의 발레가 막을 올렸다. 지난달 31일 막을 올린 국립 발레단의 ‘춘향’ ‘레 실피드’ ‘뮤자게트’. 3일까지 계속되는 이 세 편의 발레는 몇 가지 점에서 큰 기대를 모았다.

우선 세 작품이 각기 낭만, 고전, 현대의 미학을 함축하고 있어 발레 역사의 갈라 콘서트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둘째는 20세기 초 러시아 발레를 혁신한 미하일 포킨의 안무(춘향, 레 실피드)와 그로부터 100년 뒤 러시아 현대 발레를 이끌고 있는 보리스 에이프만의 안무(뮤자게트)가 한 무대에서 만났다는 점이다.

‘레 실피드’는 몇몇 솔리스트의 뛰어난 기량과 요정 군무의 앙상블로 낭만주의 정취,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회화적 정경에서 국립 발레단의 역량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뮤자게트’는 2004년 세계적인 안무가 조지 밸런친 탄생 100주년을 맞아 밸런친에게 헌정한 작품인데, 현대적인 발레 언어에 ‘아폴로’ ‘세레나데’ 등 밸런친의 유명한 안무가 적절히 인용된 것이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늙은 예술가 역의 김현웅과 뮤즈 김주원의 빼어난 연기와 테크닉은 관객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세 작품 중 하이라이트는 단연 ‘춘향’이었다. 1930년대 발레 뤼스(러시아 발레단)가 한국의 고전소설을 발레로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미롭지만, 그것을 복원했다는 것 또한 놀라운 사건이다.

70여 년 전 포킨이 안무한 ‘춘향’은 ‘춘향전’을 나름대로 각색한 것이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성춘향과 이도령의 사랑 이야기와는 다르다. 제목을 ‘사랑의 시련’이라 달았고, 원작에 비해 희극적 요소가 강조됐다. 이번 공연은 안무는 그대로 복원하되 중국풍 의상과 무대로 꾸며졌던 원작은 한국적인 분위기로 교정했다. 한복의 원색이 갖고 있는 강렬함과 우아함이 무대 ‘일월도’를 배경으로 되살아났다. 춘향이 중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포킨의 안무는 현란한 움직임과 세련된 무대 구성에 익숙한 오늘날 관객에겐 다소 낯설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 발레 뤼스 시대의 스타일과 포킨의 미학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국립발레단의 ‘춘향’에 큰 박수를 보낸다. 우리에게 복원과 재해석이라는 화두를 던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의 현대 발레를 고전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한국의 고전을 복원하고 재해석할 수 있을 때, 한국 발레는 세계 무대와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다.

장선희 세종대 무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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