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의 멋진 그림 ‘금강전도’가 표지를 장식했고 표지 아래쪽엔 ‘기획특집-한국문화의 전통이란 무엇인가’ ‘이슈-새롭게 출현된 금동보살반가상’ ‘기획시리즈-포구로 떠나는 역사기행’이란 문구가 써 있었다.
서점에서 사 볼 수 있는 전통문화 관련 잡지가 거의 없다는 점이 늘 아쉬웠기에 이 만남이 반가웠다. 속표지를 열어 보니 발행일이 올해 초로 되어 있었다. 수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뒤늦게 이 잡지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었다.
더욱 기분 좋은 일은 이 잡지를 지방에서 발행했다는 사실이었다. 전북 전주시 전북역사문화학회와 신아출판사가 함께 만든 것이었다. 역사와 전통문화의 일반 교양잡지를 만들어 돈을 번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의 출판사가 이 같은 잡지를 만들어 전국적으로 유통시킨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역사와 전통문화에 관한 교양 잡지가 거의 없는 데다 간혹 잡지가 창간되어도 적자를 견디지 못해 폐간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재야에 있는 향토사학자들과 강단의 제도권 학자들의 견해를 한자리에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지역 문화와 중앙 문화가 만나는 전통문화 교양지의 모델을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그런 전통문화 잡지 말입니다.”(이종호 편집장)
이 편집장의 말대로 ‘역사와 문화’는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다. 재야와 제도권, 지방과 중앙, 특수성과 보편성, 전문성과 대중성이 조화를 이룬 잡지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잡지를 팔아 수익을 올린다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하다. “혹시 독지가가 있느냐”고 이 편집장에게 물었더니 “출판사 사장님이 ‘끝까지 도와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궁금증이 풀리지 않아 “공공도서관 같은 곳에서 잡지를 구입하지 않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이 편집장의 목소리에 힘이 쭉 빠졌다.
“전국의 공공도서관과 박물관 500여 곳에 창간호를 보냈는데 정기 구독하겠다고 한 곳이 불과 두 군데였습니다. 서운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1일은 잡지의 날이었다. 잡지는 독특한 힘이 있다. 지식의 흐름을 주도하기도 하고 이슈를 만들어 시대를 이끌기도 한다. 1950, 60년대 젊은이들이 ‘학원’을 보면서 문학예술의 꿈을 키웠고 1970년대엔 ‘문학과 지성’ ‘창작과 비평’ 등을 읽으며 시대를 고뇌하지 않았던가. 그래서인지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잡지를 창간하고 싶다”는 출판인이 많다.
조만간 ‘역사와 문화’ 3호가 나온다고 한다. 100호, 200호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예향(藝鄕) 전주에서 전해 오는 전통의 향기가 좋다. 해가 바뀌기 전에 전주에 내려가 이 편집장과 함께 그 유명한 전주 ‘가맥’(가게에서 파는 맥주)을 한잔해야겠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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