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한국고전번역원으로 탈바꿈하는 민족문화추진회 등의 노력으로 한문으로 된 우리 고전 연구와 번역이 상당한 성과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고전이 널리 읽히는 것일까. 저자는 회의적이라고 말한다.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장인 임형택 교수는 30여 년간 우리 고전을 발굴해 소개하는 일에 천착해 왔다. 그의 고전 해제는 내용이 풍부하고 정확한 정보가 담겨 연구자들 사이에 치밀한 논고로 이름나 있다.
21세기 신지식문화의 시대에 그가 고전의 진수를 창조적으로 해석해 알리기 위해 해 온 작업의 결산이 이 책이다. 얼핏 우리 고전의 고갱이를 요약해 모은 듯 보이지만 전혀 아니다. 임 교수는 고전 하나하나마다 저자의 계보, 사상적 배경, 사상의 궤적까지 면밀히 분석해 냈다.
이 책은 고려 말 이색의 ‘목은집’부터 20세기 초 이태준의 ‘해방 전후’까지 40종의 고전을 소개한다. 박지원의 ‘열하일기’, 정약용의 ‘목민심서’처럼 잘 알려진 고전은 저자의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했다.
알려지지 않은 고전도 새롭게 발굴했다. 저자에 따르면, 19세기 가장 개성적이고 빼어난 실천적 사상을 펼쳤음에도 후대에 잊혀진 것은 학문하는 우리가 반성해야 할 대목이라고 평한 심대윤(1806∼1872) 전집이 여기에 속한다. 저자는 “심대윤의 사상은 기존 유학 사상과 달라 학문의 내용 논리와 사상이 세상에 공표되기 어려워 비밀문서처럼 숨어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런 만큼 심대윤의 학적 계보와 교유 관계도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저자는 각종 문헌을 뒤진 끝에 심대윤이 반역자로 몰려 숙청당한 가문의 후손으로 빈궁한 처지에서 상업에 종사했다는 사실을 찾아낸다. 심대윤은 자신의 현실적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 본성을 욕망에서 찾는 이른바 ‘성욕설’을 제창하고 궁극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실천적 방안을 찾는다. 그의 사상은 하늘의 이치를 보존하고 인간 욕망을 배제하는 주자학과 다른 이단으로 비쳤다. 저자는 심대윤의 사상이 19세기 외부에서 들어온 서학으로 방황하는 백성을 앉아서 볼 수 없다는 사명감에 배경을 두고 있음을 분석해 낸다.
이 책은 한길사가 교양 수준을 높이고 인문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새로 기획한 ‘이상의 도서관’ 시리즈 중 첫 권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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