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杜甫보다 일필휘지의 李白식 글쓰기 선호”

  • 입력 2007년 11월 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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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번역 ‘의천도룡기’ 작가 진융 인터뷰

진융(金庸·84·사진).

국내에는 ‘김용’으로 더 익숙한 이름이다. 대표작 ‘사조삼부곡’이 1986년 ‘영웅문’(고려원·절판)이란 이름으로 국내에 소개된 뒤 수많은 추종자를 이끌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대표적인 인터넷 동호회 ‘곽정과 양과’는 회원 수가 1만6000여 명에 이른다.

최근 김영사가 국내에서 낸 진융의 ‘의천도룡기’(전 8권·임홍빈 옮김·각권 9500원)는 ‘사조삼부곡’의 완결판이다. 1부 ‘사조영웅전’(2003년) 2부 ‘신조협려’(2005년)와 함께 국내 첫 공식 계약본이다. 중국 초판은 1961년 나왔으나 저자가 2004년까지 수정판을 냈다. 이번에 국내 출시된 것은 최종 3차 수정판이다.

1일 홍콩의 밍허(明河) 출판사 접견실에서 만난 저자는 노구에도 눈빛이 형형했다. 그는 “지난해 10월경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지만 올해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역사학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어서 기회를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무협소설이란 장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내면과 보편적 고민을 다뤘다.

“무협소설만 고집한 건 아니다. ‘산문기’라는 일반 소설도 썼다. 다만 어릴 때부터 무협소설을 좋아했다. 수준 낮은 장르로 인식되던 무협소설에 예술성을 부여하려 노력했다. 그러자 평단과 대중의 시각도 바뀌기 시작했다.”

―하지만 선생의 작품은 순수예술문학이기보단 대중통속소설로 평가받는데….

“순수냐 통속이냐는 이중적 잣대에 찬성하지 않는다. 중국에도 과거 이런 논쟁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학자들은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합병(合倂)’에 무게중심을 둔다. 요즘 중국 등 아시아에서 한류가 거세다. 드라마 ‘대장금’ ‘가을연가’와 영화 ‘친절한 금자씨’ ‘밀양’ ‘8월의 크리스마스’ 등을 재미있게 봤다. 모두 상업적 작품이지만 예술성도 있더라.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춘 작품을 좋아하는 것은 세계 공통이다.”

―‘의천도룡기’의 장무기는 우유부단하다. 이처럼 선생의 작품 속 남성 주인공은 저마다 약점을 지녔다. 반면 여성 주인공은 총명하고 매력적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르다. 소설 주인공도 같을 순 없다. 비현실적이기보다 인간적인 영웅을 그리려 했다. 여성 주인공이 똑똑한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원래 여성이 총명하다. 둘째, 그래야 글쓰기도 즐겁고 수월하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이 그걸 원한다. 한국의 고전 ‘춘향전’도 이몽룡보다 춘향이가 더 현명한 인물 아닌가.”

―작품의 얼개가 매우 복잡하다. 어떤 식으로 글을 쓰는가.

“먼저 중국 역사에 대한 상당한 공부가 필요하다. 고전과 사료를 많이 참조한다. 몇 가지 설계가 이뤄진 뒤엔 자연스럽게 글을 쓴다. 촘촘히 글을 구성하는 두보(杜甫)보다 ‘일필휘지(一筆揮之)’의 이백(李白) 식 글쓰기를 선호한다.”

―최근 선생의 작품 ‘천룡팔부’ 등이 중국 중고교 교과서에 실렸다.

“한때 중국과 대만에서 내 작품은 금서(禁書)였다. 무협이 대중에게 유해하다는 오해 탓이었다. 오히려 해외에서 인기를 끌면서 판금이 풀렸다. 교과서에 실리는 건 문체의 영향이 클 것이다. 나는 외래어투를 최대한 자제하고 중국 고유의 문법을 쓰려 노력한다.”

―한국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고려원 판본이 북한에 흘러들어가 인기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실제로 북한 군인에게 팬레터를 받은 적도 있다. 책의 교류처럼 남북한이 평화롭게 통일됐으면 좋겠다. 요즘 한국 문화의 위상이 높다. 김치 맛을 지키듯 한국 문화의 매력을 잘 유지하기 바란다.”

홍콩=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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