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우리 삶의 원형이 이랬을까. 이 책을 덮으면서 떠오르는 단상이다. 이 책은 숲을 아버지와 어머니로 여기고 사는 중앙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 이투리 숲의 ‘밤부티 피그미’ 족과 3년간 함께 살면서 그들의 생활을 기록한 ‘연구 관찰기’다.
저자에 따르면 피그미에게 숲은 추장이자 법관이자 지도자이자 중재자이다. 피그미는 개인의 권위를 멀리하고 책임도 공동의 것으로 인식한다.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 한눈을 팔아도 남편은 “내 일이 아니다”라고 한다. 모두의 일이라는 것이다. 문제 발생 초기에는 개인적으로 몸싸움을 벌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모두가 모여 논쟁을 벌인다.
육아도 공동의 책임이다. 피그미 어린이는 부모 또래 어른들을 어머니나 아버지로 부르고, 그보다 나이 많은 어른들은 할아버지나 할머니로 부른다. 또래에게는 형제나 자매라는 호칭이 사용된다. 멀고 가까운 관계에 따라 다양한 호칭과 그에 따른 행동 방식이 규정되는 다른 아프리카 흑인 사회에 비해 피그미는 훨씬 덜 공식적인 셈이다.
피그미의 노랫말은 간단한데 “숲은 좋다”는 가사가 늘 붙는다. 이들이 노래를 부르는 까닭은 숲을 깨우기 위해서다. 한 노인은 저자에게 “숲이 즐겁게 깨어나기를 바라기 때문에 노래를 부르지. 그러면 모든 것이 다시 좋아진다네. 그렇게 우리 세상이 다 잘 돌아가면 다시 숲에게 노래를 불러 우리의 행복을 나누네”라고 말했다.
저자는 옥스퍼드대에서 인류학을 공부하다가 1951, 54년 아프리카 탐사에서 피그미를 알게 된 뒤 1957년 이투리 숲으로 들어가 피그미와 함께 지냈다. 피그미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에서 전설의 일부로 알려질 만큼 오해를 받아왔다. 20세기에 와서도 피그미는 인근 흑인의 노예로 살아가는 원시인으로 인식됐으나 저자 덕분에 ‘친구’로 회복됐다.
이 책은 1961년에 나와 46년간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고 있지만 국내 번역은 처음이다. 인류학 관련 교양서에 대한 무관심을 말해 주는 셈이다. 뒤늦은 출간도 반갑지만, 술술 읽히는 책의 흐름과 매끄러운 번역도 이 책의 미덕이다.
허엽 기자 heo@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