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간 화학자/전창림 지음/304쪽·1만6000원·랜덤하우스코리아
변호사와 화학자가 미술관에 갔다. 무언가 흥미로우면서도 범상치 않은 얘기가 나올 법하지 않은가.
먼저 조윤선 변호사 겸 한국씨티은행 부행장의 ‘미술관에서 오페라를 만나다’. 유명 오페라와 연관된 그림 이야기, 불후의 명화 속에 담긴 오페라 이야기를 담았다. 오페라 칼럼니스트로 이름이 난 저자는 이 책에선 미술 마니아라는 사실도 보여 준다.
‘나비부인’ ‘돈 카를로’ ‘나부코’ ‘토스카’ 등 오페라 10여 편과 고흐, 모네, 렘브란트, 피카소의 작품 등 오페라와 관련된 명화 120여 점을 소개했다. 세계 곳곳의 미술관에 ‘숨겨진’ 작품들을 하나하나 불러내 오페라에 생명을 불어 넣어 준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나비부인’의 경우, 19세기 말 유럽을 휩쓸었던 자포니즘(Japonism)과 일본 미술에 매료된 모네, 마네, 고흐 등을 넘나들면서 그 비극적인 분위기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그 분위기는 19세기 말 일본 화가 가와나베 교사이(河鍋曉齋)의 ‘미인도’에서 정점에 이른다. ‘병풍 뒤로 들어가 자결하기 직전의 초초상이 아들의 모습을 한 번 더 돌아보는 장면을 연상시킨다’는 대목은 오페라 ‘나비부인’보다 더 비극적이다.
이런 점이 책의 매력이다. 운명의 덫에 걸린 인물들을 그린 오페라 ‘돈 카를로’편에선 등장인물에 얽힌 다양한 초상화만으로도 그들 삶의 고뇌를 그대로 읽어낼 수 있다.
화학자가 바라본 미술은 마치 미스터리를 풀어 가는 탐정의 세계 같다. ‘미술관에 간 화학자’는 명화에 얽힌 화학 미스터리와 명화에 대한 저자의 감상문을 한데 엮은 것이다. 홍익대 교수인 저자의 전공은 미술재료학. 물감과 안료의 변화, 색의 특성을 연구하는 학문 분야다.
특히 그림 속 화학 이야기가 재미있다. 화학자의 눈으로 보면 렘브란트의 ‘야경’은 원래 낮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100년이 지나 그림이 어둡게 변하자 뒤늦게 ‘야경’이란 이름이 붙은 것이다. 안료를 분석해보면 납과 황 성분이 발견되는데 이 성분이 공기 중에서 결합하면 검게 변한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야경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화가들의 돌연사의 배후에 흰색 물감이 있다는 얘기도 흥미롭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19세기 화가 제임스 휘슬러. 그는 1860년대 흰색 열풍에 힘입어 흰색 물감을 즐겨 사용했다. 그런데 흰색 안료에는 다른 색 안료보다 납 성분이 훨씬 더 많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휘슬러는 납중독으로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니, 그건 화가와 화학의 악연이 아닐까.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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