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7일간 32곡 ‘소나타 마라톤’ 백건우

  • 입력 2007년 11월 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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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생제르망데프레의 한 카페에 앉아 있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 그는 “음악이란 평소에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게 하고, 좀 더 높은 정신세계로 이끌어 가는 것”이라며 “미국 뉴욕 줄리아드음악원을 졸업한 후 내 삶에 변화와 자극이 필요했기 때문에 프랑스에 정착했다”고 말했다. 파리=전승훈  기자
프랑스 파리 생제르망데프레의 한 카페에 앉아 있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 그는 “음악이란 평소에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게 하고, 좀 더 높은 정신세계로 이끌어 가는 것”이라며 “미국 뉴욕 줄리아드음악원을 졸업한 후 내 삶에 변화와 자극이 필요했기 때문에 프랑스에 정착했다”고 말했다. 파리=전승훈 기자
《피아니스트 백건우(61) 씨는 프랑스 파리 동남쪽 외곽의 뱅센 숲 근처에 있는 5층짜리 아파트에 28년째 살고 있다. ‘건반 위의 구도자’로 불리는 그의 집에선 피아노 연습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주민들이 시끄럽다고 항의라도 할 만한데 연주를 앞두고 밤늦게까지 피아노를 친 다음 날이면 오히려 문 앞에 꽃다발이 놓여 있다. “어느 날 아래층 사람을 만났는데 제게 감사할 일이 있다고 말하더군요. 늙은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6개월 전부터 제 피아노 소리만 듣다가 행복하게 가셨다면서….”》

백 씨는 평생 연주만 해 온 사람이다. 그는 교수직도, 학생들 가르치는 레슨도 하지 않았다. 오직 피아노 건반 위에서 고독한 순례 여행만 해 왔다. 리스트, 라벨, 프로코피예프, 쇼팽, 라흐마니노프….

그가 3년 만에 ‘피아노의 에베레스트’라고 불리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32개) 녹음의 대장정을 마쳤다. 이달 중 마지막 베토벤 후기 소나타 앨범 출시를 앞두고 그를 최근 파리에서 만났다.

○ 생생한 연주 위해 베토벤 유적지 찾아

집에 컴퓨터도 자동차도 없는 ‘심플 라이프’를 즐기는 백 씨는 부인 윤정희(63) 씨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생제르망데프레 거리에 나타났다. 백 씨는 “연주자는 직장도 안 다니니까 차가 필요 없다”며 “화려한 것보다는 들꽃 같은 삶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얼마 전 프랑스 수녀의 삶에 대한 기사를 봤는데, 수녀의 재산이 조그만 상자 안에 다 들어가더군요. 추상과 정신의 세계를 다루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게 뭐 있을까요.”

백 씨는 지난 3년 동안 베토벤과 함께 살았다. 러시아 모스크바 페스티벌, 체코 프라하 봄 페스티벌, 프랑스 디나르 페스티벌, 중국 광저우, 독일 뮌헨,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와 빈, 영국 웨일스 등에서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했다.

또한 베토벤이 유서를 쓴 하일리겐슈타트의 집, ‘영웅’을 작곡한 에로이카 하우스, 베토벤이 산책했던 숲 등 유적지를 여행했다. 이런 여정은 베토벤 전집에 DVD 다큐멘터리로도 담길 예정이다.

“베토벤이 산책했던 빈의 숲을 걸어 보면서 나무와 대화를 나누고, 위로를 받아야 했던 그의 지독한 고독이 느껴졌어요. 음악인은 항상 새로운 체험이 필요합니다. 평생 이렇게 한 세계에 빠져본 것은 처음입니다.”

영화배우였던 부인 윤 씨는 “쇼팽, 라벨, 프로코피예프 등의 전곡을 파고드는 남편을 지켜보면서 작곡가들의 세계가 몸에 배어 드니 피아니스트의 아내도 무척 매력 있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 “연주자와 청중 한마음으로 감동 나눠야”

“녹음을 마쳤지만, 내 인생의 베토벤 연주는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백 씨는 다음 달 8∼14일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1577-5266)에서 베토벤 소나타 32곡을 7일 동안 8회에 걸쳐 연주한다. 한두 달에 걸쳐 전곡을 연주하는 사례는 있었지만, 7일간 쉼 없이 완주하는 것은 기네스북 감이다.

“1주일에 한 곡씩, 한 달에 한 곡씩 하게 되면 쉽지만 음악이 끊기지요. 첫날의 흥분이 다음 날로 이어지고, 또 그 다음 날로 이어지고…. 연주자와 청중이 처음부터 끝까지 흥분과 감동을 나누는 시간을 꿈꿉니다.”

인터뷰 후 백 씨 부부와 함께 파리의 뒷골목을 걸었다. 화가 들라크루아 박물관을 지나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가 즐겨 찾던 ‘카페 되 마고’ ‘카페 드 플로라’….

서늘한 가을 날씨에도 야외 테라스에는 와인과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어두운 뒷골목에서 서로의 어깨를 기댄 채 앞서 걷는 부부의 뒷모습은 무척이나 정겨웠다.

파리=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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