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쎈돌’ 이세돌(사진) 9단이 전성시대를 열고 있다.
그는 최근 명인전에서 우승하며 7관왕에 올랐다. 현재 국수전 도전기에서 선승을 거둬 타이틀 획득 가능성을 높였다. 또 이달 열리는 LG배 세계기왕전과 삼성화재배에도 각각 8강과 4강에 올라 있어 세계 기전 추가도 노린다. 그가 이들 기전에서 모두 우승한다면 10관왕에 오를 수 있다.
승률도 73승 17패, 81%로 프로기사가 된 이후 최고의 성적을 올리고 있다. 월간바둑 구기호 편집장은 “타이틀을 여러 개 갖고 있는 기사가 예선 대국을 두지 않는데도 승률 80%를 넘기는 것은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성적이 좋다 보니 그의 스케줄에 따라 기전 일정이 재조정될 정도다. 더구나 최근엔 결승전이나 세계대회 본선 등 중요한 대국이 대부분이다. 3일 GS칼텍스배 결승 1국을 중국 칭다오에서 치르고 온 그는 8일 GS칼텍스배 결승 2국, 12∼14일 LG배 세계기왕전 8강과 4강전(진출 시), 16일 원익배 십단전, 20∼23일 삼성화재배 준결승 3번기, 26일 기성전 본선 등 사나흘 간격으로 대국을 가져야 한다.
프로기사들은 그가 성적도 뛰어나지만 바둑의 질이 달라졌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박영훈(랭킹 3위) 9단과의 GS칼텍스배 결승 1국이나 윤준상 6단을 이긴 국수전 도전 1국을 보면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붙여 꼼짝 못하게 만들며 낙승을 거뒀다.
명인전 결승전에서 조한승(랭킹 4위) 9단을 3-0으로 셧아웃시킨 것도 인상적이다. 세 판 모두 불리했지만 끈질기게 따라가 역전극을 펼쳤다.
“강렬하지만 무리를 할때가 많았는데 최근 무리함이 많이 사라졌다.”(조한승 9단)
“예전보다 많이 두터워졌고 훨씬 안정감이 생겼어요.”(홍민표 6단)
특히 안정감은 주목할 만하다. 수년간 이세돌 9단이 최정상급 기사라고 인정하면서도 1인자로는 이창호 9단을 꼽았던 것은 안정감이 부족했기 때문. 한번 기세를 타면 그 누구도 이세돌 9단 앞에서 무사하지 못했지만 기세가 꺾이면 약체에게도 패하는 등 들쭉날쭉한 성적을 보여 왔다. 이창호 9단처럼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던 것.
그러나 최근 바둑에선 한눈에 봐도 막강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안정적인 바둑을 두고 있다. 이세돌 9단이 전성시대를 맞고 있긴 하지만 그가 풀어야 할 숙제가 하나 남아 있다. 바로 직전의 1인자였던 이창호 9단을 넘어야 한다는 것. 이창호 9단은 1990년대 초반 조훈현 9단을 처절히 침몰시키며 1인자로 등극했다. 그러나 최근 이창호 9단을 뒷전으로 물러나게 한 것은 윤준상 강동윤 등이 이세돌 9단보다 어린 신예 기사들이다. 또 이세돌 9단이 갖고 있는 타이틀 중 이창호 9단에게 뺏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는 2000년 이후 이창호 9단과 5번의 결승 혹은 도전기를 벌였는데 한 번만 이겼을 뿐이다.
다만 역대 전적에서 19승 23패로 근소하게 뒤지지만 최근 2년간 성적은 6승 3패로 앞서 있다는 점이 위안거리다. 특히 도요타덴소배 4강전, LG배 기왕전 8강 등 주요대국에서 이겼다.
이세돌 9단도 이런 점을 의식한 듯 “아직 진정한 1인자는 아니다”라며 “이창호 9단이 컨디션을 회복하면 제대로 겨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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