翟(적)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그가 형법과 소송을 담당하는 지위에 오르자 손님들이 집 문 앞에 가득했다. 그가 자리를 그만두자 문 밖은 새 잡는 그물을 설치할 정도였다. 후에 다시 예전의 지위에 오르니 다시 사람이 몰려들었다. 그러자 그는 문에 커다랗게 써 붙였다. “생사를 겪어 보면 교제의 정분을 알고, 빈부를 겪어 보면 교제의 태도를 안다. 귀하고 또 천해 보면 교제의 정분이 드러난다.”
炎凉(염량)이라는 말이 있다. 더위와 추위 또는 부귀와 빈천을 뜻하는데, 동시에 무상하게 변하는 사나운 인심을 비유한다. 즉 세력이 있을 때는 아첨하며 좇다가 세력이 없어지면 푸대접하는 세태를 꼬집는 말이다.
귀하거나 천하거나,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언제나 일정하여 변하지 않는 교제가 있다. 그들 사이에는 교만함도 비굴함도 존재하지 않으며, 불순한 이권이나 세력도 개입하지 않는다. 오로지 진정만이 있을 뿐이다. 흔하지는 않지만 누구나 원하는 아름다운 교제이다. ‘史記(사기)’에 보인다.
오수형 서울대 교수·중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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