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골 총각이 소를 팔러 간다. 우시장이 파할 때까지 서성이지만 소를 사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옆에서 소가 말을 한다. 말하는 소라,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 어딘가에서 본 얘기 같다.
김도연(41·사진) 씨는 현실과 환상을 함께 버무리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 온 소설가다. ‘말하는 소’가 별로 친절하지 않게, 처음부터 느닷없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의 지난 작업을 생각하면 낯선 것은 아니다. 게다가 부모의 구박을 받는 노총각 농사꾼 주인공의 모습은, 강원 평창 산골에서 부모님과 살면서 농사도 짓고 소설도 쓰는 작가를 떠올리게 해 읽다 보면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그렇다고 마냥 동화 같은 얘기는 아니다. 주인공이 ‘말하는 소’와 옛날 얘기를 주고받는 장면이, 정말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듯 무심하게 나오더니, 이어서 그보다 그악스러울 수 없는 부자간 대화가 나온다. 시간적으로는 소를 팔기 전 상황. 외양간에서 쇠똥 치우는 게 얼마나 지겨운지, 총각 아들은 소를 그만 키우자고 아버지한테 성질을 낸다.
“트랙터로 갈면 한나절이면 되는 일을 왜 며칠씩 힘들게 일을 해요!” “트랙터 부르면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데 그걸 불러!” “아 그럼 아버지가 쇠똥 쳐요! 난 소하고 인연 끊을 테니!”
그래서 아버지의 만류에도 소를 팔겠다고 나섰지만 기대했던 값을 받을 수 없다. 소는 안 팔리고, 이대로 소와 함께 집에 갈 순 없고 해서 사내는 소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때마침 옛 연인이 연락을 한다. 사내의 친구와 결혼했던 그 여인은, 막 남편의 장례를 치른 뒤 사내의 여행길에 동참한다.
모든 길 떠나는 텍스트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장소를 보여 주는 게 아니다. 그것은 길 떠나는 사람에게, 그리고 길 떠나는 사람의 행로를 따라 읽는 독자들에게 자신도 잊었던 내면을 새롭게 보여 준다. 횡성 우시장을 떠나 청도로, 해남 땅 끝으로, 고창 고인돌마을로, 대천 해수욕장으로, 서울 견지동 조계사로 옮겨 가는 길, 돈은 없지만 소는 사고 싶다는 부자(父子)와, 소를 한없이 애틋하게 돌봐 주는 경찰과, 농담인지 선문답인지 모호한 얘기를 하는 ‘맙소사’의 주지를 만난다. 그 여정에 소의 배 속에 들어가는 꿈, 소와 자신이 불타는 꿈이 섞여든다. 어쩌면 ‘말하는 소’란 꿈일지도, 혹은 소와 함께 하는 여행 자체가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술술 나가는 건 아니지만 은근히 맛깔 나게 읽히는 문장도 재미를 돋운다.
물론 이 여행길에서 차츰 드러나는 것은 시골 총각의 마음에 억지로 잠재워 있던 커다란 사랑의 상처다. 상처의 대상인 옛 연인과 소와 함께 하는 기이한 여행을 통해 사내는 상처와 마주하게 되고 낯선 장소, 낯선 이들과의 부대낌을 통해 차츰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
그저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했을 뿐이라고 의뭉스럽게 눙치는 작가. 그런데 읽다 보면 시골이든 도시든 ‘고독해지는 지구’ 위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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