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유명하던 서울 청계8가 ‘황학동 도깨비시장’은 지금 없다.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도깨비시장 노점상 대부분이 동대문운동장으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도깨비시장은 사라졌지만 청계천변 남쪽 골목골목에 자리한 황학동 만물시장은 여전히 건재하다. 그 분주한 골목길에서 ‘황학동의 미학’을 찾는 작가들이 있다.
낙엽이 흩날리던 8일 오후, 황학동 만물시장 가구골목에서 작가 강상훈(29) 씨가 일주일 전 길바닥에 깔아놓은 두꺼운 종이(약 1.5×2.5m)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종이 위로 상인과 행인들,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분주히 지나갔다. 종이는 더러워지면서 조금씩 검은색으로 변해 갔다.
“2, 3일 더 지나면 이 종이를 걷어 가 작업을 시작할 겁니다. 시커먼 먼지나 때를 지우개로 지워나가면서 만물시장의 풍경을 표현하는 것이죠. 지우는 강약을 미세하게 조절하면 건물이나 사람들의 모습이 잘 드러나게 됩니다. 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지우는 데 들어가는 시간은 꼬박 일주일 정도 걸립니다.”
강 씨가 황학동에서 이 독특한 미술작업을 시작한 것은 6월 말부터. 지금까지 15장 정도의 종이를 시커멓게 만들었다. 종이 한 장을 길거리에 깔아놓는 기간은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황학동 현장에서 황학동 사람들의 흔적과 체취를 담아내는 그의 작업은 황학동 역사에 대한 경외감의 표현이다. 더러운 먼지와 때가 지워지면서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는 황학동 풍경은 마치 여명을 연상시킨다.
이 아이디어는 올해 서울 충무갤러리 기획공모전(주제 ‘황학동-만물시장’)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이번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김문경(30) 씨의 사진도 매력적이다. 그는 올여름부터 주말마다 오후 11시부터 다음 날 오전 5시까지 황학동 만물시장을 찾아 노점상들이 놓고 간 리어카를 카메라에 담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리어카를 포장한 파란색 비닐이 투명하게 빛난다. 쓸쓸해서 더 아름다운 황학동의 미학.
강 씨와 김 씨를 비롯해 이번 기획공모전에 입선한 작가 10명의 작품은 28일부터 12월 30일까지 서울 중구 흥인동 충무갤러리에서 전시된다. 02-2230-6600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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