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라흐마니노프” 김선욱 런던무대 ‘브라보 물결’

  • 입력 2007년 11월 12일 03시 00분


“내면의 깊은 감성으로 객석과 함께 호흡”

열아홉 살의 피아니스트는 당당했다. 그의 라흐마니노프 연주는 박력이 넘쳤다. 피아니스트 김선욱. 절제된, 그러면서도 섬세한 감성이 담긴 건반 터치 하나하나에 런던의 청중은 숨을 죽였다. 마침내 파가니니 주제의 화려한 변주가 끝나는 순간, 2800여 객석을 가득 메운 청중은 ‘브라보!’와 함께 갈채를 쏟아냈다.

9일 오후 7시 반 영국 런던 템스 강변의 사우스뱅크 센터에 있는 로열페스티벌홀. 강 건너 빅벤의 시계탑과 런던의 모습을 한눈에 조망하는 ‘런던 아이’의 푸른색 조명이 어우러진 환상적 야경이 보이는 이곳에서 김선욱은 런던 데뷔 무대를 가졌다.

그는 이날 러시아 출신 지휘자 바실리 시나이스키가 지휘하는 런던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함께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를 연주했다.

“런던 데뷔 무대에 목숨을 걸겠다”던 김선욱. 그가 장기인 강력한 파워와 로맨틱한 연주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베토벤이나 브람스 곡을 선택하지 않은 데 대한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기우였다. 김선욱은 피아니스트였던 라흐마니노프가 피아니스트를 위해 마련해 놓은 무한대의 테크닉과 낭만적 서정을 자신만의 해석으로 펼쳐 보였다. 그의 피아노 소리는 런던필의 웅장한 사운드와 함께 어우러지면서도 투명하게 울렸으며, 특유의 카리스마 넘치는 터치는 ‘제2의 지휘자’인 듯 오케스트라를 지배해 나갔다.

이날 연주는 2006년 영국 리즈 콩쿠르 우승자인 김선욱을 런던필이 특별 초청한 무대. 1932년 지휘자 토머스 비첨 경이 설립한 런던필은 게오르크 숄티, 쿠르트 마주어 등 거장 지휘자가 이끌어 온 영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 런던필은 올해 창단 75주년과 로열페스티벌홀 재개관 기념으로 페스티벌을 열고 있으며,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1960년 쇼팽 콩쿠르 우승)와 함께 김선욱을 ‘콩쿠르 우승자 시리즈’에 초청했다.

이날 음악회에는 영국 음반사인 EMI를 비롯해 수많은 관계자가 참석했다. 티모시 워커 런던필 예술감독은 “김선욱의 수준 높은 테크닉과 섬세한 표현력, 음악성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며 “특히 내면의 깊은 감성으로 라흐마니노프를 자연스럽게 연주하면서 객석과 소통하고 함께 호흡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김선욱은 4일에는 바이올리니스트 다비트 오이스트라흐, 피아니스트 알프레트 브렌델 등이 초청 연주를 했던 런던의 유서 깊은 ‘밀힐 뮤직클럽’에서 독주회를 가졌다. 프랭크 코르노프스키 밀힐 뮤직클럽 회장은 “한국에서만 공부했다는 김선욱이 젊은 나이에 그토록 깊은 감성을 가졌다는 게 믿을 수 없다”며 “회원들이 그와의 사랑에 푹 빠졌으며 앞으로도 그를 런던에 계속 초청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객석에는 2005년 제1회 대원예술인상을 받은 김선욱을 후원해 온 김일곤 대원문화재단 이사장과 최정화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장, 피아니스트 신수정(전 서울대 음대 학장) 씨 등 기업인과 예술인으로 구성된 ‘응원단’ 20여 명도 함께 참석했다.

김선욱은 이달 말 서울시향(지휘 정명훈)과 중국 베이징에서, 내년 1월에는 영국 맨체스터에서 할레 오케스트라(지휘 마크 엘더)와, 3월에는 영국 BBC 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협연한다. 또 아이슬란드 체코 독일 등 유럽 전역에서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내년 2월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는 김선욱은 “아직 젊기 때문에 런던이든, 웨일스든, 베이징이든 가는 곳마다 데뷔 무대여서 늘 긴장이 된다”며 “여행하면서 공부하고 도전하는 이 순간이 즐겁다”고 말했다.

런던=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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