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빛난 ‘시대의 일상’
좋은 사진엔 시대의 흔적이 담겨 있다. 그 흔적은 단순한 역사적 기록에 그치지 않고 예술의 경지로 나아간다.
사진과 역사와 예술이 한데서 만나는 사진전이 열린다. 모두 흑백 사진의 명품으로, 단순한 감상 차원에 그치지 않고 한국 사진사를 진지하게 연구해 볼 만한 작품이다.
우선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 내년 2월 3일까지 열리는 정해창 탄생 100주년 기념 ‘벽(癖)의 예찬, 근대인 정해창을 말하다’.
낯선 이름 정해창(1907∼1968)이지만 전시장에서 그의 사진을 보면 그가 참으로 범상치 않은 사진작가였음을 실감할 수 있다. 그는 근대기 전방위적 예인이었다. 그는 1929년 국내 최초로 예술사진 개인전을 연 사진작가였으며 그림과 전각을 했고 불교미술 연구에도 매진해 미술이론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1929∼39년 사진가로 활동하던 시기의 사진, 1940년대 이후 서예가와 전각가로 활동했던 시기의 서예 전각 등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주목할 만한 건 역시 사진이다. 정해창의 초기 사진은 구도나 배경 선정에서 당시 한국 사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예술성을 보여 준다. 방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여인, 나무 그늘에 서 있는 여인의 뒷모습 사진은 당시 사진관에서 찍는 판에 박은 인물사진 구도를 뛰어넘는 대담하고 참신한 시도였다. 그가 찍은 자화상 사진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의 사진은 그림과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나무 밑의 말을 찍은 사진은 대담하면서 동시에 조선시대 윤두서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그의 풍경 사진은 마치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하다.
이들 사진은 1930년대 일상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다분히 회화적인 예술의 경지에 이른 작품이다. 정해창의 사진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한국 사진사는 물론이고 당시 한국 회화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사진학계는 물론 미술사학계에서도 정해창을 주목하는 이유다. 02-2020-2055
12월 11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김영섭사진화랑에서 열리는 ‘일어서는 침묵-한국의 탑파’도 사진과 역사를 생각하게 하는 수작 30여 점을 선보인다.
작가는 15년 동안 탑 사진에만 매달려온 이태한 여주대 교수. 탑의 의미와 미학을 연구하기 위해 대학원에서 별도로 불교미술을 공부했을 정도다.
그의 탑 사진은 차원이 다르다. 탑을 클로즈업해 탑 자체에만 매달렸던 기존 사진작가들과 달리 그는 탑 사진에 과감하게 풍경을 끌어들였다. 탑의 배경을 이루는 주변 풍경이 화면을 압도한다. 그러면서도 탑과 풍경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