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침대든, 병상이든 책과 함께 살고 지고

  • 입력 2007년 11월 17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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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와 책/정혜윤 지음/240쪽·1만1000원·웅진지식하우스

◇대단한 책/요네하라 마리 지음·이언숙 옮김/680쪽·2만7000원·마음산책

두 책의 저자는 독서로 일가를 이룬 마니아다. 이들은 책을 통해 자신과 대화하고 세상과 소통한다. 책을 통해 낯선 얼굴과 낯선 곳을 만나고 그 속으로 들어가 자리 잡는다.

두 책은 기술 방식이 닮았으나 내용의 차이는 작지 않다. ‘침대와 책’이 개인이나 일상을 주제로 미시적이고 발랄한 대화를 나누는 데 비해 ‘대단한 책’은 세계화 등 큰 주제를 사유한다.

‘침대와 책’은 저자 정혜윤(라디오 PD) 씨가 웹진에 연재한 칼럼을 모은 것이다. 제목 ‘침대와 책’은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라는 부제와 달리, 침대는 저자가 책을 가장 많이, 쉽게 접하는 장소다. 저자는 “침대에서 겉옷쯤은 벗어 던지고 그 다음을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기는 순간, 나의 일상은 언제나 불안정하고 나의 영혼은 호기심과 설렘으로 충만하다”고 말한다.

저자의 호기심과 설렘은 이 책에서 일상에 대한 독서기로 정리돼 있다. ‘꽃 같은 그대가 울고 있을 때’ 편을 보면 후배가 한없이 울고 있을 때, 저자는 프랑수아 트뤼포 전기에서 읽은 편지의 문장을 떠올린다. ‘매일 너에게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어. 너도 그렇게 해다오. 내게 편지해. 내게 편지해.’

‘내 옆의 남자들이 매력 없고 한심해 보일 때’ 저자는 남자들이 예뻐 죽겠다는 책을 찾아 읽는다. ‘개선문’ ‘빅 피시’ ‘장미의 이름’ 등.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는 ‘장미의 이름’ 첫 장부터, 윌리엄 수도사의 용모부터 저자를 흥분시킨다고 한다.

우울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할퀴고 싶지 않을 때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토성 편을 펼친다. 토성은 태양을 30년에 한 번씩 공전하기 때문에 토성과 그 위성에서는 계절 변화가 지구보다 훨씬 느리게 진행된다. 토성의 영향 아래 태어났다는 발터 베냐민은 자신의 우울을 이런 토성적 기질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저자는 이런 글을 읽다가 “오늘 난 토성의 영향 아래 있는 거야”를 주문처럼 외우면 우울의 이유들이 우주의 비호 아래 인간적인 감정으로 정당성을 얻게 되고 조금은 회복된다는 것이다.

‘대단한 책’은 ‘독서 생활인’으로 불리는 저자가 주간지에 연재한 ‘독서일기’를 비롯해 길고 짧은 서평을 모은 글이다. 이 책에선 186편의 글로 390권의 책을 이야기하지만, 이는 저자가 읽은 책 중 일부일 뿐이다. 저자는 20년간 하루 7권씩 책을 읽었다고 한다.

글의 주제는 ‘고양이와 살다’ 등도 있지만 대부분 ‘파란만장 2명의 사회주의자’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잔혹한 일본 파시즘’ ‘생태계를 지키는 존재의 무게’처럼 진지한 것들이다.

저자는 암으로 2006년 5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독서일기 ‘내 몸으로 암 치료 책을 직접 검증하다 3’은 죽기 7일 전에 실렸다. 자신을 좀먹는 암과의 싸움도 독서일기로 남겼다.

허엽 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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