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 작가 유미리(39) 씨의 새 소설은 전과 달리 어둡지 않다. 유령과 함께 지낸다는 내용은 으스스해 보이지만, 작품의 분위기는 부드럽다.
작가는 이례적으로 ‘독자에게’라는 글을 붙였는데, “말할 것도 없이, 저는 비를 몰고 다니는 여자입니다”라는 대목에서는 불우했던 가정환경과 혼외임신 등 작가의 파란만장한 개인사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곤충 사진작가인 아빠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초등학교 6학년 아메(‘비’라는 뜻). 사진 촬영하러 대만으로 떠났던 아빠가 연락이 두절된 지 2주 만에 나타났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자꾸 일어난다. 수업 참관일에 아빠가 온 것을 분명히 봤는데, 친구들은 아무도 아빠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아빠와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 속엔 아빠가 없다. 아빠는 언제나 아메를 지켜주겠다고 했는데, 아메는 이제 ‘슬픔의 냄새’를 맡는다. 소리쳐 우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속으로 오래오래 삭이게 되는 슬픔.
유 씨가 세심하게 밝힌 것처럼, 소설은 작가의 개인사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소설 속 아빠의 모습에는 작가와 깊은 유대를 나누었던 연출가 히가시 유타카(2000년 사망)가 겹쳐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어쩔 수 없이 둥글어지고 다감해지는 감각에다 오랜 정신적 동지에 대한 추억을 더해 슬프고 따뜻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캐릭터도, 문체도 순정만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인지 ‘비와 꿈 뒤에’는 TV 드라마와 연극으로 옮겨져 주목받았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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