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리아는 그리스어로 대화를 통해 해답을 구할 수 없는 난제(難題)를 말한다. 그렇다면 근대가 왜 아포리아인가.
서구 근대성을 연구한 막스 베버는 서양의 근대적 합리성이 보편성을 지녔다고 주장하면서도 그것이 서구만의 독자적 특성이라고 바라봤다. 서양이란 지역에서만 발현된 특수성이 어떻게 보편적일 수 있을까. 서구 합리성의 유효성이 곧 보편성이 될 수는 없지 않을까.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된 이 책은 한국 일본 중국의 근대화 과정의 차이를 검토한다. 동양적 가치관을 지키면서 서양의 과학·군사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절충주의 시각으로서 한국의 동도서기(東道西器), 일본의 화혼양재(和魂洋才), 중국의 중체서용(中體西用)이 닮은 듯하면서도 전혀 다른 맥락에 위치한다.
일본의 경우는 화혼과 양재를 거의 같은 비중으로 받아들였다. 양재는 서양기술뿐 아니라 제도를 포함한 것이었다. 반면 조선에선 정신으로서 동도가 더 강조됐고 서양문물로서 서기에는 제도가 빠져 있었다. 중국의 중체서용은 사실상 근대화에 대한 비판을 위해 등장한 것이다. 내용적으로도 일본이 학문·기술 중심이었다면 조선은 기독교, 중국은 공산주의에 경도되는 결과를 낳았다.
저자는 또한 자유 이성 민족과 같은 서구에서 수입된 개념이 어떻게 변용 내지 오용됐는지를 보여 줌으로써 근대의 다원성을 펼쳐낸다. 이는 보편주의 뒤에 숨은 근대의 폭력성에 대한 비판인 동시에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근대의 산물이 아니라 전근대와 초근대의 결합으로 설명한 전후 일본의 석학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