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교보문고의 포장지는 밝은 색상의 모던한 디자인이었다. 1981년 창립된 교보문고의 젊음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이와 달리 종로서적의 포장지는 단원 김홍도의 서당 그림 장면을 디자인해 넣은 전통 분위기였다. 1907년 문을 연 종로서적(2002년 폐업)의 오랜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포장지였다.
어찌됐든 그때는 교보문고와 종로서적이라는 로고가 찍힌 포장지가 중요했다. 가끔 서울 시내에 나와 교보문고 종로서적 포장지로 싼 책을 들고 하숙방으로 돌아갈 때면 마음이 절로 뿌듯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교보문고와 종로서적의 로고는 그 자체가 지성과 교양의 상징이었다. 어찌 보면 젊은 패션의 중요한 소품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한 출판인에게 이런 얘기를 하자 그는 또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당시 책표지를 다른 종이로 싸서 들고 다닌 건 독재정권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랬다. 그 서슬 퍼런 시절, 맘 편히 사회과학 책을 들고 다닐 수 없었으니. 책 표지를 싸서 들고 다닌다는 것의 사회적 문화적 의미가 참으로 다양하고 재미있던 시절이었다.
표지를 싸서 책을 들고 다니는 일은 1990년대를 거치면서 거의 사라져갔다. 상품의 과대 포장 금지 정책 때문이기도 했고 우리 사회의 민주화 덕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 책 표지 디자인의 일취월장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최근 10여 년 사이 우리 책의 표지 디자인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좋아졌다. 독자들도 같은 조건이면 표지 디자인이 좋은 책을 사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표지가 절반”이라고 할 정도로 표지 디자인의 경쟁이 치열하다.
북디자이너가 책 한 권 표지를 디자인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2주 정도. 표지 한 건당 받는 돈은 100만∼150만 원. 표지와 본문까지 통째로 디자인할 경우엔 보통 한 달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물론 돈은 서너 배 더 받는다.
그러나 표지 디자이너들의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그림이나 사진이 많이 들어가는 책들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그렇게 작업을 해도 출판사 대표로부터 퇴짜를 맞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다른 히트작을 모방하는 경우도 생기곤 한다. 표지에 손으로 쓴 것 같은 글씨체를 넣어 디자인하는 것이 그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물론 중요한 마케팅 전략의 하나다. 누군가는 디지털시대에 인간의 체취가 묻어나는 서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잘나가는 것에 대한 모방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책 표지는 아름다운 것도 중요하지만 책의 본질을 적절하게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프리랜서 북디자이너 이석운 씨는 8년 동안 1000여 권의 표지를 디자인했다. 현재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디자이너 가운데 한 명이다. 그런데 이 씨의 말이 겸손하고 재미있다. “제가 디자인한 책이 잘 팔리는 걸 보면 기분 좋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원고가 좋아서 움직이는 게 아닐까요. 좋은 글은 스스로 움직이는 법이니까요.”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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