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 “제자리 놔두고 덮은 후 새 광화문 올려야”
《경복궁 광화문 유구(遺構·옛 토목건축 구조 양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자취)는 온전히 보존될 수 있을까. 이달 초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발굴조사 결과 1864년(고종 1년) 중건 때의 흔적뿐 아니라 창건(태조∼세종 추정) 때의 흔적까지 발견돼 주목받은 광화문 터. 》
발굴조사가 끝나 가는 요즘, 이곳 유구의 보존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최근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창건 당시 광화문은 중건 때와 문설주 자리가 달랐고 건축물 정면과 측면 넓이도 중건 때보다 날씬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창건 때의 전체 규모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온전한 흔적이 남아 있었던 것. 유구는 그 자체로 광화문의 시대별 변천 과정과 축조방식을 가늠할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된다.
문제는 이 자리에 새 광화문을 복원해야 한다는 점이다. 당초 문화재청은 올해 9월 고종 때 광화문 유구를 발굴했을 때만 해도 광화문 자리 근처에 지하철이 지나가 지반이 불안정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광화문 복원을 위한 전면 기초공사 과정에서 유구를 실측해 기록한 뒤 없앨 방안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면 기초공사를 위해 지반을 다지려면 유구 훼손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복궁 복원 자문위원회는 창건 때 흔적까지 완벽히 확인된 이상 광화문 유구를 다른 곳에 옮겨서라도 반드시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20일 확인됐다. 자문위에는 김동현 한국전통문화학교 석좌교수, 김동욱 경기대 교수, 윤홍로 문화재위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
김동현 교수는 “광화문 유구는 없애고 싶다고 파헤칠 수 있는 문화유산이 아니다”며 “다른 기관에서 없애겠다고 나서도 반대해야 할 문화재청이 먼저 없애겠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학계에선 유구를 제자리에 보존하고 그 위에 콘크리트로 기초를 만든 뒤 광화문을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구자는 “고종 때, 창건 당시 광화문 기초를 그대로 두고 그 위에 광화문을 중건한 덕분에 지금까지 창건 때의 광화문 흔적이 완벽히 보존된 것”이라며 “애써 발굴해 없애 버린다면 무엇을 위한 발굴이 되는가”라고 말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자문위는 유구 보존과 복원 공사의 안전성을 모두 충족하도록 광화문 유구를 다른 곳으로 옮겨 보존하라는 의견을 내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보존 장소와 이전 방안을 문화재청에 요구했다.
문화재청 궁릉관리과 김종수 과장은 “유구 전체를 보존하긴 어렵다. 일부 부재(部材·구조물의 뼈대를 이루는 요소가 되는 재료)를 별도 공간으로 옮겨 보존하고 그렇지 못한 부분은 기록으로 남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자문위 의견을 존중해야 하지만 100% 이행할 수 있는 방안인지 예산과 보존 공간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연구자는 “석탑을 이전 보존할 때 부재 일부만 보존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며 “유구를 온전히 보존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보존 복원 철학의 부재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발굴조사를 먼저 하고 결과를 검토해 복원 방식과 시기를 결정하는 게 합리적이지만 문화재청의 방식은 복원 시기를 미리 정해 놓아(광화문은 2009년 완공 예정) 지나치게 발굴을 서두른다는 것. 유구 보존 계획은 문화재청이 아니라 발굴기관인 국립문화재연구소가 결정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이강근 경주대 교수는 “광화문 이전에 복원된 경복궁의 다른 건축물의 복원 기준을 모두 고종 중건 때로 맞춰놓은 탓에 앞선 시대의 유구가 발견돼도 보존하지 않고 복원해 창건 때 자리가 어디인지 확인할 기회를 놓쳤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광화문 유구의 보존과 광화문 복원 방식을 이달 말 최종 결정한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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