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라 불리는 역사시험의 시대이자 퀴즈쇼 형태의 갖가지 에듀테인먼트가 각광받는 시대다. 어쩌면 상식에 해당하는 질문을 던지겠다. 다음 문장에 대해 ○, ×로 답해 보라.
“고조선의 ‘고’는 이성계의 조선과 구별하기 위해 붙인 것이다.” “고려 태조 왕건의 성은 왕씨다.” “행주치마는 행주대첩에서 나온 말이다.” “현모양처는 조선시대의 이상적 여성상을 뜻하는 말이다.”
이런 문제가 과연 퀴즈가 될 수 있을까 싶다. 그러나 한국사의 상식 44가지를 뽑아낸 이 책에 따르면 정답은 모두 ×다.
고조선은 이미 고려시대부터 기자조선, 위만조선과 구별하기 위해 단군조선에 붙인 말이다. 왕건은 할아버지 작제건, 아버지 용건처럼 성 없이 그냥 왕건이었는데 왕조를 세운 뒤 자신의 이름의 일부를 성으로 삼았다.
행주치마는 행주대첩(1593년) 이전 최세진이란 학자가 쓴 ‘사성통례’(1517년)와 ‘훈몽자회’(1527년)에 이미 등장한다.
현모양처는 일본이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국가에 걸맞은 국민 양성을 위해 여성 교육을 강화하면서 등장한 말로 한국에선 1906년 ‘양규의숙’이란 여학교의 설립 취지문에 처음 등장했다. 조선시대 자녀 교육은 여성이 아닌 남성의 몫이었다. 현모양처의 상징으로 신사임당이 등장한 것도 한국의 산업화가 본격화한 1960년대 이후였다.
이 책에선 역사적 인물에 대한 잘못된 상식의 진위를 밝혀 놓은 내용도 많다. ‘귀주대첩’에서 쇠가죽으로 강물을 막아 놨다가 한꺼번에 터뜨려 승리한 강감찬, 붓두껍에 목화씨를 감춰 들어온 문익점, 10만 양병설을 주장한 율곡 이이, ‘씨 없는 수박’을 발명한 우장춘 등이 그것이다.
강감찬이 강물을 이용한 기습전으로 승리한 전투는 ‘흥화진(지금의 의주) 전투’이고 귀주대첩은 평원에서 펼친 일대 회전이었다. 문익점이 목화씨를 들여올 때 목화씨는 원나라의 금수품목이 아니었으며 그냥 주머니에 넣어 왔다. 10만 양병설은 율곡의 수많은 상소문에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으며 그 후학인 서인이 집권한 뒤부터 등장한다는 점에서 당쟁을 위한 과장의 산물일 가능성이 크다.
‘씨 없는 수박’은 우장춘의 육종학 연구를 토대로 일본인 기하라 시토시(木原均)가 1943년에 발명한 것으로 1953년 귀국한 우장춘이 육종학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시범 재배한 것이다.
이처럼 상식퀴즈 정답을 결코 진리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홍길동전’이 최초의 한글소설이란 지위를 1996년 발견된 ‘설공찬전’에 양보하게 된 것처럼 상식은 계속 바뀌기 때문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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