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꽉 막힌 표준어… 사투리를 복권하라!

  • 입력 2007년 11월 24일 03시 03분


◇방언의 미학/이상규 지음/330쪽·1만5000원·살림

한국의 웬만한 대학 학과 첫머리에 오르는 것이 국어국문학과다. ‘언어가 존재의 집’이란 하이데거에 의거해 말하자면 거기엔 국어국문학이야말로 한국 민족이란 존재의 거처를 마련하는 ‘제1학문’이란 의식이 숨어 있다. 거기엔 우리말 우리글까지 말살하려 했던 식민통치기에 대한 강렬한 피해의식도 숨어 있다. 이는 다시 한국인이 자랑할 만한 세계적 발명품으로서 ‘한글’에 대한 애착과 결부돼 특히 국어학에 대한 ‘신성화’를 낳았다.

학문의 도약은 ‘성상(聖像) 타파’를 통해 이뤄진다. 최근 역사학계에서 무수한 이론이 탄생하고 있는 것은 ‘민족’의 신성함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제1학문을 자처하는 국어학은 여전히 ‘국어’의 신성한 주술을 깨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마치 민족의 영혼의 수호자란 착각에 빠져 어리석고 우둔한 언중(言衆)이 이를 오염시킬까 봐 전전긍긍하는 중세의 성직자처럼 행세하고 있다.

현직 국립국어원장이 ‘우리말 풍경 돌아보기’란 부제를 붙여 낸 이 책은 그런 국어학계 내부 변화의 움직임을 보여 준다. 이상규 원장은 국어학계가 신주단지 모시듯 지키고 있는 표준어 원칙의 모순성과 폐쇄성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1933년 이래 70년간 서울지역 교양인이 사용하는 언어를 표준어로 정한 것이 결국 영어에 의해 국어가 파괴되는 현상과 같은 논리에 서 있다는 것이다. 서울 지역 외 다른 방언을 공식 언어에서 배제하는 배타적 표준어정책이 무수한 사투리의 말살을 낳은 것이나 세계 표준언어로서 영어가 소수 언어를 포식(捕食)하는 것이나 같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국어학계에서 한국에서 ‘영어마을’이 넘쳐나고 대통령이나 정부 관료가 직수입된 영어 표현을 선호하는 현상을 비판하기 전에 우리 어문정책부터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문학 작품을 풍성하게 한 무수한 사투리가 ‘잘못된 말’로 규정돼 말살되는 안타까운 실태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것에 멈추지 않는다. 국어원에서 펴내는 ‘표준국어사전’이 일관된 기준이나 원칙 없이 소수 국어학자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현실 고발로 이어진다. 현행 표준어만을 한국어로 규정하는 한글맞춤법과 표준어규정에 의하면 신어, 다듬은 말(순화어), 전문어, 방언은 한국어가 아니다. 외래어를 따로 사정한다며 그 원칙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외래어와 외국어를 구분할 기준도 없다.

1933년 우리 표준어정책이 채택될 당시 참조했던 일본도 1948년 도쿄 중심의 표준어정책에서 다양한 지역 방언을 아우르는 공통어정책으로 전환했다. 덕분에 우리 표준어 사전이 3권 분량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 일본 국어사전은 30권 분량으로 확대됐다.

이 원장은 표준어 중심의 남한과 문화어 중심의 북한 어문정책을 통합하는 남북 언어의 통일 과정에서 이런 폐쇄적인 어문정책을 대대적으로 손볼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그 전에 ‘한국어’의 표기와 발음 원칙을 소수 학자들의 자의적 선택이 아닌 언중의 선택에 상당 부분 위탁하는 ‘언어정책의 민주화’부터 이룰 것을 제의해 본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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