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작품은 조각가 이모 씨 팀에서 출품한 ‘비상’, ‘청계천의 기억’, ‘오작교’, ‘사색의 산책’.
‘비상’은 2006년 경남 김해시가 공모를 통해 남해고속도로 서김해 나들목 입구에 설치한 조형물 ‘김해시의 비상’을 연상시킨다. 전체적 모습과 크기, 세부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 여기서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당선자 이 씨가 ‘김해시의 비상’을 공동 출품했던 3명 중 한 명이라는 사실. 모작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공모에 당선돼 이미 설치까지 끝난 작품의 디자인을 또다시 다른 공모에 출품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청계천의 기억’은 물 위로 솟아오르는 고래의 머리 부분과 물 속으로 들어가는 꼬리 부분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것은 부산시 공모에 당선돼 올해 초 송도해수욕장에 설치한 이상진 씨의 ‘고래 등대’와 비슷하다.
‘오작교’는 1972년 독일 뮌헨 올림픽 때 설치했던 조형물과 닮았다는 평이다. 또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시키는 ‘사색의 산책’은 스위스의 조각가 막스 빌(1908∼1994)의 작품 ‘끝없는 표면’과 유사하다. 이런 의혹은 빌의 유족에게까지 알려졌다. 인터넷 미술잡지 ‘현대미술’은 “막스 빌의 아들에게 e메일을 통해 자료를 보내 주자 ‘당선작은 아버지 작품의 표절’이라면서 ‘당선작으로 확정된다면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알려 왔다”고 밝혔다. 국제적 논란에 휩싸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모작 의혹이 커지면서 이번 공모에 출품했던 다른 작가들이 당선 취소를 요구하고 있지만 SH공사는 “모작 여부를 확인하겠다”고 밝혔을 뿐 특별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당선자 팀에 참여한 한 작가는 “비슷하다고 볼 수는 있지만 예술 작품은 원래 복잡 미묘하기 때문에 두부 자르듯 모작이라고 말해선 안 된다”면서 “공개토론을 하자”고 제의했다. 그의 말대로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연의 일치로 보기엔 유사점이 너무 많다.
모작은 표절이고 표절은 범죄다. SH공사는 서둘러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공개토론회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미적거린다면 더 큰 수렁에 빠질 수 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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