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 아침을 산뜻한 기분으로 시작하고 싶은 분은 절대 읽지 마십시오.
‘왔노라 보았노라 토했노라.’
‘쏘우(saw)’ 시리즈를 본 미국의 한 평론가가 한 말이다.
‘쏘우’는 천재적 살인마 ‘직쏘’ 박사의 게임에 휘말린 사람들이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거나 남을 죽이는 극단적 상황에 부딪치는 내용이다. 지금 4편이 상영 중. 그 수위는 한마디로 ‘우웩’ 수준. 이번에도 두개골을 드릴로 절단하는 시체 해부 장면부터 시작해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머리 가죽을 벗겨 내는 등 그 잔인함이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에선 4년째 핼러윈에 개봉돼 계속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올해도 4주 동안 제작비 1000만 달러(약 90억 원)의 6배를 벌었다. 국내에선 흥행 성공은 못했지만 마니아층이 존재한다. 영화평론가이자 심리학자인 심영섭 씨는 이 잔혹함에 대한 열광이 ‘금기를 깨는 쾌락’이라고 했다. 상상에서나 가능한 금기를 넘어서는 카타르시스. 더구나 미국에선 관객들이 이걸 즐겁게 휘파람을 불면서 관람한단다. 진지함 없이 그저 하나의 ‘살인 게임’으로 보는 것. 우리와는 다르다. 어쨌든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된다며 싫어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저 영화일 뿐 너무 엄숙할 필요는 없다”는 사람도 많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점점 나빠진다. 갈수록 ‘어떻게 죽일 것인가’에 집중한다. ‘쏘우’ 마니아라는 대학생 양민 씨는 “극한 상황에서 인물들의 심리나 제한된 시간 내의 미션 수행이라는 매력 때문에 좋아했지만 갈수록 잔인함 때문에 스토리가 실종된다”고 말했다.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신체를 갖고 장난하는 이 파렴치한 영화의 주인공 직쏘 박사의 신조는 ‘삶을 소중히 하라(cherish your life)’다. 그는 주로 삶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죽인다. 살인마인 주제에 무슨 교훈? 처음엔 비웃었다. 그런데 이 영화를 자꾸 보다 보니 그 교훈이 몸으로 느껴진다.
연말이 가까워졌다. ‘세상은 아름답다’며 삶의 희망을 북돋아 주는 영화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좋긴 한데, 좀 닭살이다. 만약 인생이 갑갑하고 진짜 살기 싫다면, 염장 지르는 로맨틱 코미디보다 오히려 ‘쏘우’ 같은 피범벅 영화를 보시라. 만날 ‘죽고 싶다’고들 하지만 진짜 죽을 상황이 닥쳤을 때, 인간은 뭐든지 다한다. 영화 속 사람들은 수십 개의 칼날을 얼굴로 밀고 열쇠를 꺼내려 염산에 손을 집어넣는다. 살기 위해서.
그걸 보고 어두컴컴한 극장을 나온 순간, 지옥에서 탈출한 느낌이다. 매연 가득한 서울의 공기는 너무도 달다. 사지가 붙어 있고 손가락 발가락까지 멀쩡하게 살아있음이 너무 감사하다. 아,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주의 ‘약발’이 일주일도 안 갑니다. 삶의 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더 센 걸로 계속 보다가 나중엔 무감각해지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마치 포르노처럼.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