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문학]내 안의 재능이 깨어났어!…‘열네 살의 인턴십’

  • 입력 2007년 12월 1일 03시 02분


◇ 열네 살의 인턴십/마리 오드 뮈라이유 지음/김주열 옮김·242쪽·8000원·바람의아이들

“인턴십이라니! 자기 나라 글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녀석이 인턴십을 한다고?”

밥상머리에서 루이의 아빠는 또 버럭 소리를 지른다. 잘나가는 외과의사 눈에 아들 루이는 신통찮다. 공부는 별로고 항상 우울 모드. 사내자식다운 패기나 활달함도 없다.

일주일 인턴체험은 학교에서 내준 현장학습 과제. 있는 집답게 부모는 방송국 인턴을 알아봐 준다. 하지만 루이는 일방적인 아빠가 싫다. 할머니가 생각나는 대로 얘기한 동네 미용실에서 일하기로 마음먹는다. 발끈하던 아빠도 ‘고생 좀 해봐야 정신 차리지’란 심사에 허락한다.

뭐에도 심드렁한 루이. 미용실 역시 서먹하다. 게다가 시중들고 청소하고…. 허리 펼 틈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다. 남의 머리를 다듬는 일이 즐거워 보인다. 게다가 한 번만 보면 곧잘 따라 한다고 칭찬까지? 어디서도 느껴 본 일 없는 ‘몰입의 즐거움’을 배우기 시작한다.

‘열네 살의…’는 상큼하다. 짤막한 문장은 깔끔하게 이야기를 끌고 간다. 답답하고 속상해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자기 심정을 알아주는 건 천장뿐이었다.” 실타래처럼 복잡하지만 뭐라 설명할 길 없는 사춘기의 속내. 그 처연함이 담백하게 묻어난다.

담백함은 공감도가 높다. 프랑스 소년 루이는 우리네 까까머리 10대로 상상해도 어색하지 않다. 엄격하고 주장 강한 아버지, 다정하지만 가장의 뜻에 따르는 어머니, 공부 잘하고 일류대학 가야 대접받는 사회.

삭막한 세상이지만 숨겨진 보석도 있다. 사고로 남편과 자식, 두 다리를 잃었지만 씩씩한 원장, 여성스럽다고 놀림받지만 의젓한 남성미용사 피피, 사고뭉치 비행소녀지만 잔정 많은 갸랑스…. 머리 약품 냄새로 눈까지 시큼한 미용실에서 루이는 다른 향기를 맡는다. 진짜 사람 냄새란 인생의 보석을 발견한다.

시시껄렁한 세상의 잣대. 그건 성인도 버거운 일이다. 하지만 그걸 이겨 내는 건 오직 본인의 몫이다. 누구에게나 재능은 있다. 문제는 우연이라도 그걸 발견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가이다. 말수가 적은 루이는 알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작은 나사 하나가 집요하게 돌아가는 한” 꿈을 향해 멈추지 말라. 투정은 그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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