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군주는 군주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고 말했다. 군주는 예(禮)로 다스리고 신하는 예로 섬긴다는 뜻이다. 성스러운 지도자(성인·聖人)와 명재상(현자·賢者)의 만남이다.
그러나 한비자는 이는 판타지라며 단숨에 부정한다. “임금과 신하는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신하에게 충성심이란 없다. 그러므로 신하의 이익이 이뤄지면 군주의 이익은 사라지는 것이다.”(한비자의 내저설 하)
한비자는 군주와 신하는 서로의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 투쟁하는 관계로 봤다. 그렇기에 신하에게 무조건 충성을 요구하는 것은 군주의 어리석음이자 조직을 허약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군주는 충성보다 재능을 기대해야 하며 법치와 술수와 권력으로 신하가 충성을 바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중국 전국시대 말기 법치주의를 외친 한비자의 말을 현대적 리더와 리더십, 권력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다시 들여다본 것이다. 앞의 사례에서 군주와 신하를 지도자와 부하로 바꾸면 둘 사이 끊임없는 긴장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에서 법가 사상은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이유로 억눌려 왔으며 그 자리는 덕치를 주장한 유가 사상이 차지해 왔다. 그러나 황실이나 권력가 내부에서는 법가 사상이 은밀하게 전수돼 왔다. 저자는 유가를 통치이념으로 정립한 한(漢) 무제도 통치 수단으로는 법가의 방법론을 즐겼다고 전한다. 이른바 내법외유(內法外儒)다.
한비자는 생전에 어지러운 천하에서 권력이 빚어낸 어이없는 죽음을 수없이 보고 들었다(그 역시 동문수학하던 친구의 술수에 휘말려 죽었다). 한비자의 사상이 오늘날 들여다봐도 냉혹할 정도로 현실적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한비자는 군주에게 간언하기 전에 군주의 심리를 먼저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권력의 심리를 파악하지 못하면 좋은 말도 역린(逆鱗)을 건드려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주의 총애를 받을수록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는 한비자의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저자는 한비자의 말 중 눈길이 가는 대목 중 하나로 리더는 보통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꼽는다. 플라톤의 철인, 공자의 성인에 대한 환상을 깨는 말로 요나 순임금이 오지 않는다고 하늘을 원망하기보다 보통 사람들이 합심해 문제를 해결하는 상황에서 참된 리더가 나온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한비자의 말을 리더의 7가지 조건으로 요약했다. ‘리더는 용의 등에 올라탄다’ ‘리더는 부하의 충성에 의지하지 않는다’ ‘리더는 세상의 모든 지혜를 빌린다’ 등. 흔히 듣는 말이긴 해도, 이런 조건들을 한비자가 모은 옛 이야기와 함께 곱씹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허엽 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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