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비친 꽃은 바라볼 수 있을 뿐 다가갈 수 없다.
열심히 했던 일도 다시 올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가 버렸다….”
“훗날 이 글을 읽을 사람이여,
… 이 순간 우리네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중국 진(晉)의 서예가 왕희지(307∼365)가 어느 날 난정(蘭亭)을 찾았다. 난정은 중국 저장(浙江) 성 사오싱(紹興) 서남쪽의 란주(蘭渚)에 있던 정자. 왕희지가 난정에서 주변을 보니 “높은 산과 험준한 봉우리가 사방을 에워싸고 있는 데다 그 사이로 더욱 돋보이는 울창한 숲과 길게 자란 대나무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산에 올라 멀리 바라보면 홀로 푸르른 하늘 위로 올라선 것 같고 숲 속을 걷노라면 옛 사람들의 그윽한 정취가 감돌았다”.
이 형언할 수 없는 내면의 격정을 “종이 위에 휘갈겨 쓰지 않을 수 없었다”는 왕희지. “흰 구름 두둥실 가볍게 떠가고 만물이 갖가지 모습을 하고 있는” 자연에 넋을 잃다가 문득 인간 세상의 짧음에 탄식한다. “진심을 다했던 감정들이 물에 비친 꽃이 돼 버렸다. 물에 비친 꽃은 바라볼 수 있을 뿐 다가갈 수 없다. 열심히 했던 일도 다시 올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가 버렸다….”
이 책은 이처럼 중국의 역대 산문 중 백미라 할 수 있는 기행산문 34편을 모았다. 왕희지 도연명 구양수 왕안석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중국 문인들의 작품들이다. 한국어판 제목의 취옹(醉翁)은 술 취한 늙은이란 뜻으로, 중국 송(宋)의 문인 구양수의 호이기도 하다.
산문마다 산수의 아름다움에 진심 어린 감탄을 보내는 취옹들의 세밀한 관찰과 풍부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자연 속에서 깨닫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성찰도 읽을 수 있다. 중국 작가 루서우룽(盧壽榮)과 허옌(何燕)이 원문 해석에 그치지 않고 현대적 감각으로 기행산문의 생생한 현장감을 살렸다. 원문을 같이 실어 본연의 맛을 함께 느끼도록 했다. 중국 편저자의 이름을 책 앞에 밝히지 않은 것은 옥에 티다. 역자 후기에 이 사실을 밝혔지만 자칫 독자들이 역자가 현대 언어로 다시 쓴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