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푸코에게 역사의 문법을 배우다’

  • 입력 2007년 12월 1일 03시 02분


◇ 푸코에게 역사의 문법을 배우다/이영남 지음/340쪽·1만3500원·푸른역사

1990년대 한국에서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1926∼1984)는 권력에 대한 저항을 꿈꾸는 이들에게 계급투쟁을 대신할 새로운 ‘마르크스’였다. ‘타자’ ‘담론’ 같은 개념들이 한 시대를 풍미했다. 누구나 푸코에 대해 한마디씩 했고 푸코를 안다고 했다.

구조가 주체를 결정한다고 믿었던 구조주의자. 정신병자의 역사를 통해 정상과 비정상, 이성과 비이성의 경계를 물었던 사상가. 감옥, 학교, 병원이 개인을 어떻게 규율하는지 물었던 실천적 지식인….

그러나 우리는 푸코를 제대로 알고 ‘선용(善用)’하고 있을까. 이 책은 묻는다. 책은 한마디로 ‘푸코에 대한 찬사’다. 국가기록원 학예연구관으로 일하는 저자는 역사가로서 푸코의 삶과 이론의 궤적을 하나하나 풀어낸다. 때론 푸코의 책을 읽고 받은 감명을, 때론 인간적인 푸코의 삶을 사색적으로 담는다. 나아가 푸코를 선용해 한국 현대사를 푸코의 방식으로 해석한다. “푸코를 내 몸에 맞는 단백질로 바꾸는 것이야말로 푸코의 사유에 대한 찬사”란 저자의 말이 인상적이다.

책 곳곳에서 저자는 푸코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으로 한발 한발 다가선다. 저자의 눈으로 읽어 낸 푸코는 계획하지 않은 지적 방황을 계속했다. 현재에 머무는 것을 거부하고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가는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나의 담론에 얽매이지 않고 경계를 넘나드는 글쓰기 덕분에 시간이 갈수록 그의 저작은 빛을 발한다. 삶과 사유와 글이 일치한 실천적 지식인이기도 하다.

저자는 푸코의 겉으로 드러난 삶뿐 아니라 가려진 실존적 삶까지 감싸 안는다. 그 삶에서 사람과 섞이지 못하는 불우한 영혼의 외로움, 동성애를 인정하는 사회가 진정한 문명사회라고 말할 때의 쓸쓸함(그는 동성애자였고 몇 차례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을 본다.

무엇보다 역사가로서 푸코는 주류가 된 ‘외침의 역사’, 이성의 언어로 기록된 역사 아래 침묵을 강요당한 사람들의 시선에서 ‘침묵의 역사’를 재구성했다. 1961년에 나온 그의 저서 ‘광기의 역사’는 17∼18세기 광인으로 구금된 이들의 역사를 그들의 관점에서 쓴 것이다. 사회의 정상적인 것을 입증하기 위해 동원되는 비정상을 푸코는 ‘타자’라고 불렀다. 그 작업은 모두 ‘1차 사료’를 부지런히 뒤진 뒤에야 시작했다.

저자는 한발 더 나아가 푸코를 ‘선용’해 한국현대사를 ‘효율성’으로 재구성한다. 1960년대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킨 뒤 비생산적인 정부를 일신하기 위해 받아들인 국가 효율성 개념은 이제 자본주의 효율성으로 둔갑해 개인의 삶을 지배하는 사회 원리가 됐다. 모든 것이 효율로 평가되는 이 사회에서 효율적이지 못한 사람들은 비정상이고 치유가 필요한 사람으로 취급된다. 치유의 한 방법으로 자기계발서와 심리학 책을 끊임없이 권유하는 사회는, 광인을 격리해 교정했던 17세기 서구 사회와 본질적으로 같지 않을까 싶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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