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임진왜란 동아시아 삼국전쟁’

  • 입력 2007년 12월 1일 03시 02분


◇ 임진왜란 동아시아 삼국전쟁/정두희, 이경순 엮음/460쪽·2만8000원·휴머니스트

역사의 덧칠 걷어내고 보는 韓中日의 ‘임진전쟁’

같은 한자 문화권임에도 한국에선 ‘임진왜란(壬辰倭亂)’, 일본에선 ‘문록·경장의 역(文祿-慶長の役)’, 중국에선 ‘원조선(援朝鮮·조선을 돕는다)’으로 표기가 제각기인 전쟁. 3국을 모두 합쳐놔도 승자만 있고 패자는 없는 전쟁. 400여 년 전에 치러졌지만 망각될 만하면 끊임없이 현실로 소환되는 ‘기억’의 전쟁.

지난해 6월 그 전쟁의 최대 격전지 중 한 곳인 경남 통영에서 나흘간에 걸쳐 펼쳐진 서강대 국제한국학센터 주최 국제학술회의의 성과를 묶어낸 이 책에는 야심만만하면서도 불온한 의도가 숨어 있다.

야심만만하다는 것은 백년전쟁, 종교전쟁 등 무수한 ‘전쟁’의 역사가 축적돼 이뤄진 유럽사의 전통을 동아시아에도 심어 보자는 점에서다. 또한 그것을 국사(國史)의 영역에 갇혀 끊임없이 과장 또는 미화되는 이 전쟁의 신화를 붕괴시키는 방식으로 이루려 한다는 점에서 불온하다.

임진왜란은 동아시아에서 수백 년간 지속된 조공-책봉의 중화질서를 무너뜨린 전쟁이다. 1402년 제작된 조선 최초의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지도’와의 비교를 통해 확인된다. 중국을 가장 크게, 그 다음으로 조선을 아프리카 대륙보다 크게 그린 이 지도에서 일본은 지금의 필리핀만큼 멀리 떨어져 있고 크기도 한반도의 4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전쟁으로 일본은 중국의 라이벌로 부상했고, 명은 만주의 청에 의해 멸망했으며 조선은 현실을 도외시한 채 명분에 집착하는 ‘은둔의 나라’로 전락했다.

전쟁이 가져온 고통으로 인해 잊혔던 이 전쟁은 동아시아에서 근대 민족국가가 형성될 때 부활한다. 일본에선 정한론과 일본의 대륙 침략을 정당화하는 성스러운 전쟁으로 윤색되면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국가적 영웅으로 재등장한다. 이에 맞서 한국에선 이순신이 성웅의 경지로 격상되며 민족주의적 열정의 핵이 된다. 이 책은 그 과정을 냉철하게 추적한다.

한국 일본 미국에서 참여한 13명의 필자는 이런 민족주의의 족쇄를 풀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이 전쟁의 명칭을 ‘임진전쟁’으로 통일할 것을 제안한다. 그렇다면 책 제목에도 임진전쟁이 돼야 하지 않았을까. 아쉬운 점은 또 있다. 임진왜란을 동아시아 3국 권력수반이 직접 개입한 첫 대규모 전쟁으로 규정한 점이다. 이는 당과 신라가 한편이 되고 고구려-백제-왜가 한편이 됐던 삼국 통일전쟁이나 몽골제국과 고구려의 일본 원정의 국제적 성격을 간과한 시각이다. 임진전쟁을 발판 삼아 이들 전쟁으로까지 연구가 확대 심화되길 기대해 본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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