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영화&쫄깃한 수다]‘샤이닝’ 상영장서 만난 세 감독

  • 입력 2007년 12월 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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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임필성 봉준호 감독, 서울아트시네마 김성욱 프로그래머.
왼쪽부터 임필성 봉준호 감독, 서울아트시네마 김성욱 프로그래머.
“진짜 공포는 내 마음속에 살아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앞에 낯익은 사람이 있다. ‘괴물’의 봉준호 감독. 영화관 문 앞에선 검은 비니를 쓴 박찬욱 감독이 팬들에게 사인을 해 주고 있다. 9월에 새신랑이 된 ‘타짜’ 최동훈 감독은 새색시 안수현 PD와 함께 왔다. 도대체 무슨 영화이기에?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아트시네마(종로구 낙원동)에서 열린 스탠리 큐브릭 특별전 중 공포영화 ‘샤이닝’을 보기 위해서다. 겨울 동안 폐쇄되는 산속 호텔에 관리인으로 일하게 된 작가 잭(잭 니컬슨)이 점점 미쳐 가는 내용. 나중엔 아내와 아들한테까지 도끼를 휘두른다. 니컬슨의 섬뜩한 표정은 ‘꿈에 나올까’ 두렵다. 김성욱 프로그래머 말로는 “니컬슨 얼굴이 특수효과”란다. 보기 힘든 큐브릭의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것도 좋지만, 상영 뒤 봉 감독과 임필성(‘남극일기’) 감독이 무대에 나와 관객과 나눈 대화는 더 재미났다.

“20번 봤는데요. 볼 때마다 느끼지만 전 큐브릭 왼쪽 세 번째 발가락의 발톱에 낀 때만도 못해요.”(봉 감독) 임 감독은 한술 더 떠 30번을 봤단다.

스테디 캠(움직이면서 흔들림 없이 촬영하는 카메라)을 처음 사용했다는 등 영화사적 의미는 영화 서적에 실컷 나올 테니 생략. 많은 감독이 이 영화에 열광하는 이유는 ‘공포’의 표현에 있다. 항상 인간의 광기를 압도적인 비주얼로 구현했던 큐브릭은 ‘샤이닝’에서 고립된 환경 속 인간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며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보여 준다. ‘요즘같이 디지털로 처바르는’(임 감독의 표현이다) 작업 없이도….

영화에 귀신도 나오지만, 상황이 불러오는 심리적 압박감이 더 무섭다는 데 다들 동의했다. 봉 감독은 ‘플란다스의 개’ 시나리오를 쓸 때 강원 속초의 한 허름한 오피스텔로 갔다. 혼자 있다 보니 나중엔 종이에 시나리오 대신 그에게 상처 준 사람 이름이 가득했다. 유리창에 배가 지나가는 경로를 매직펜으로 표시하며 지내던 두 달 뒤, 그는 혼자 얘기를 하고 있었단다. 임 감독은 영화에 대해 평가받는 것이 ‘발가벗고 길가에 내동댕이쳐지는 느낌’이라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공포에 시달린다며 영화 속 작가 잭에게 공감했다.

영화에서 잭은 계속 글을 쓰고 있는데 나중에 아내가 보니 수백 장의 종이에 온통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는 속담뿐이었다. 그 상황은 대단히 공포스럽게 표현됐다. 배우에게 100번이나 같은 연기를 시킨 완벽주의자였던 큐브릭은 그게 ‘진짜 공포’임을 알고 있었으니 속으로 얼마나 무서웠을까.

봉 감독은 결론지었다. ‘냉혹한 테크니션’ 큐브릭은, 어쩌면 자신이 만든 ‘거대한 기계 장치’ 같은 영화 뒤에 숨은 소심하고 겁 많은 사람이었을 거라고. 그래서 타인을 더 두려워하고 타인의 광기에 관심이 많았을 것이라고. 소심한 우리도, 우리가 좋아하는 ‘잘나가는’ 감독들도, 그 감독들이 동경하는 큐브릭도, 마음속에서 무언가를 끊임없이 두려워한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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