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점에 가깝습니다. 400년 전 그의 시대엔 사전도 없었고 제대로 된 문법책도 없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문법에 맞는 글을 썼는가 싶습니다. 운을 맞추기 위해 현재완료나 과거완료를 과거형으로 쓴 예외가 몇몇 있긴 하지만 그건 ‘시적 예외’로 봐야죠.”
15년여의 공을 들인 ‘셰익스피어 구문론’(전 2권·해누리)을 최근 펴낸 원로 영문학자 조성식(85·사진) 고려대 명예교수의 말이다. 1696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은 37편에 이르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 대략 1만 개가 넘는 문장을 뽑아서 의미 품사 시제 서법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셰익스피어의 영어는 오늘날 영어와 형태는 같지만 의미가 다른 경우가 많다. 가령 지금은 ‘집으로’라는 뜻의 부사 ‘home’을 당시엔 ‘철저히(thoroughly)’로 새겼고, 기후란 뜻의 ‘climate’이 당시엔 ‘지역(region)’이란 의미를 지녔다. 이 책은 그런 차이를 섬세하게 집어낸다.
셰익스피어 작품을 문법적 분석 대상으로 삼은 저서는 1869년 영국에서 출간된 E A 애벗의 ‘셰익스피어의 문법’과 1939년 독일에서 출간된 W 프란츠의 ‘셰익스피어 문법’ 두 권뿐이라는 게 조 교수의 설명.
“제 부친이 해주고보와 경성제대 선배이기도 하셨는데 그 당시로는 방대한 영어영문학 책을 수집하셨습니다. 1946년 해주에서 인천으로 내려올 때 제가 가져온 책이 딱 3권이었는데 애벗과 프란츠의 책도 들어 있었죠.”
1947년부터 경성대 예과 전임강사로 시작해 평생 영어학을 가르쳐 온 그에게 이 책은 그만큼 필생의 염원이 담긴 책이다. 책에서 셰익스피어를 부러 ‘사옹(沙翁)’이란 옛날식 창호로 부르는 것에서도 그런 애착을 읽을 수 있다.
워낙 방대한 작업이라 엄두를 못 내다 1988년 고려대를 정년퇴임하면서 뛰어들었다. 컴퓨터를 뒤늦게 배웠고 매일 오전 9시∼오후 7시 서울 중구 신당동 양옥집 2층 서재에서 영어로 된 아든(Arden)판 셰익스피어 전집과 2003년 별세한 김재남 동국대 명예교수의 ‘셰익스피어 전집’ 등을 비교해 읽고 또 읽으며 용례를 뽑고 분류했다.
“집필에는 정확히 15년이 걸렸어요. 그중 용례를 뽑는 데 근 10년이 걸렸고 교정 작업에 다시 3년을 투자했어요. 정말 힘겹고 지루한 작업이었지만 경성제대 동기인 김재남 교수의 노고가 없었다면 더욱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에 비하면 제 작업은 ‘새 발의 피’에 불과합니다. 그 친구가 살아 있다면 ‘고생했다’고 어깨를 두드려 줄 텐데….”
먼저 간 친구에 대한 애틋함과 쓸쓸함이 노학자의 눈가에 살짝 드리웠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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