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갑’ 거북선 신화 흔들린다

  • 입력 2007년 12월 4일 03시 05분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란 거북선의 신화가 흔들리고 있다.

역사저술가 박은봉 씨는 최근 낸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에서 거북선은 철갑선이 아니라 목판에 쇠 송곳을 꽂아 넣은 배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씨는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나 후대의 기록 어디에도 거북선이 철갑선이란 기록이 없으며 이순신의 조카 이분이 남긴 글이나 영조 때 개조된 거북선을 시찰한 박문수의 보고서에 ‘두꺼운 판(厚板)으로 덮여 있다’고 한 점을 들었다. 여기서 판(板)은 나무판을 뜻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는 것이다.

마침 계간 ‘역사비평’ 겨울호에 실린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신동원 교수의 ‘철갑 거북선 논쟁사’에는 거북선이 철갑선이라는 주장의 기원을 꼼꼼히 추적했다. 그에 따르면 그 최초의 기록은 이순신 장군에게 패한 일본 장수 도노오카의 회고록 ‘고려선전기(高麗船戰記)’다. 도노오카는 “큰 배 중 3척이 장님배(거북선)로, 철로 요해(要害)하여’라며 철갑선설을 주장했다. 1831년 한국을 정벌해야 한다는 일본의 ‘정한위략(征韓偉略)’은 이를 인용하며 이순신에 당한 패배를 합리화하기 위해 거북선을 철갑선으로 부풀렸다.

국내 최초의 기록은 ‘거북선이 천하에서 가장 먼저 만든 철갑선’이라고 한 유길준의 ‘서유견문’(1895년)이다. 신 교수는 유길준이 일본에서 정한위략을 보거나 전해들은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1906년 최석하의 ‘조선의 혼’이나 1908년 단재 신채호의 ‘대한의 희망’과 같은 글을 통해 항일의식과 맞물려 국내에 널리 퍼졌다.

단재는 이후 철갑선설이 정한론의 연장선에서 나왔음을 알고 1930년대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조선상고사’를 통해 철갑선설을 부인했다. 이는 광복 이후 1957년 김재근, 1958년 최영희 등으로 이어졌으나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묻혔다.

신동원 교수는 “젊은 신채호가 옳은가 만년의 신채호가 옳은가”라며 이 논쟁의 진위를 살짝 비켜갔다. 신 교수는 거북선에 앞서 1585년 네덜란드에서 철판으로 일부를 덮은 배를 만들었다는 조지프 니덤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을 소개함으로써 최소한 ‘최초’의 타이틀에 대해선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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