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중앙연구원의 세계 석학 초청 집중강좌를 위해 한국을 찾은 왕수런(王樹人·71·사진) 중국 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수는 미소를 잃지 않으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그를 4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만났다.
왕 교수는 중국 전통사상과 문화를 ‘형상적 사유’로 설명해 서구 철학과 문화에 기울어진 중국 철학계에 성찰의 화두를 던진 원로 철학자다.
고유의 사유방식을 찾아 나선 왕 교수의 철학 여정은 중국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한국 철학계에 성찰의 계기를 던진다. 그는 “전통 철학의 창을 닫아 버린 채 옛 경전을 서양 철학의 시각으로 연구한 20세기 동아시아의 철학과 문화는 서양중심론의 그림자에 완전히 갇혀 버렸다”고 말한다. 철학을 얘기할 때 주체적 화법은 잊어버리고 서양의 화법만을 사용하는 철학계를 두고 입은 있으되 우리 입은 없는 ‘실어증’이라 빗대기도 했다.
그가 찾아 나선 ‘형상적 사유’란 무엇일까. “상(像)은 사물의 형상을 직관적으로 가리키는 동시에 이 형상을 초월한 정신적인 형상을 깨닫는 과정입니다. 주역 공자 맹자 노자 장자의 사상은 모두 형상적 사유에 바탕을 두고 있지요.”
그는 ‘달’을 예로 들었다. “달이라는 대상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려 했던 서구 철학과 달리 형상적 사유는 자유로운 비유 상징 은유로 ‘달’과 연상된 도(道)를 읊었던 중국 시인의 사유와도 같다”는 것이다.
왕 교수는 중국 베이징대 등에서 칸트, 헤겔 철학을 전공했으나 1986년경 방문학자로 2년간 머문 독일에서 중국 철학을 이해하지 않으려는 서양 학자들을 보고 “우리만의 철학을 정립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는 “동아시아가 서양의 뒤꽁무니나 좇는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서양 문화를 받아들일 뿐 아니라 전통 문화에서 새로운 발견을 통해 성찰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성남=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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