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사찰 서울 봉은사 재정 첫 공개

  • 입력 2007년 12월 5일 03시 02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에서 수험생 학부모들이 수능 고득점 기원 법회에 참석한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에서 수험생 학부모들이 수능 고득점 기원 법회에 참석한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주지 명진 스님)가 사찰 재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올 1∼11월 90억 원대 규모의 재정 명세를 4일 공개했다.

20만 명의 신도를 보유한 서울 강남의 최대 사찰인 봉은사가 세출입 내용을 공개한 것은 처음이다. 불광사(서울 송파구 석촌동) 등 일부 사찰이 2005년 이후 세출입 내용을 신도에게 공개하고 있으나 봉은사가 일반으로 공개 범위를 넓힘에 따라 종단과 사찰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봉은사는 이날 올해 일반회계 86억3363만 원과 특별회계 9억8457만 원 등 96억1820만 원의 세입을 기록했으며 지출은 85억5729만 원이라고 밝혔다.

일반회계 세입 내용을 보면 불공수입(기도비 제사비 연등값 등)이 55억2000여만 원으로 가장 많았고 △불전함 수입 10억9900만 원 △사업수입 6억9000만 원 △교육연수수입 1억9800만 원 등이었다.

세출의 경우 인건비가 19억7190만 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관리 운영비 18억7600만 원 △각종 포교 및 신행단체를 지원하는 목적사업비 14억5400만 원 △조계종단에 내는 사찰 분담금 9억 원 △시설비품관리비 5억1300만 원 등이었다.

봉은사는 내년부터는 분기별로 재정 명세를 공개한 뒤 매년 공인회계사를 통해 검증받기로 했다. 불전함에서 시줏돈을 회수하는 일에 스님 외 신도도 참여시키기로 했다. 사찰에서 스님들에게 관행적으로 주던 여비(봉은사의 경우 2억2000여만 원 지출)도 앞으로는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황찬익 봉은사 종무실장은 “재정 투명화를 통해 최근 동국대 신정아 사건 등으로 추락한 불교계의 신뢰를 회복하는 단초가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8월 한국 천주교 사상 처음으로 2006년 수입 및 지출을 담은 재무제표를 주보를 통해 공개했으며, 일부 개신교 교회도 재정 상태를 공개하고 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조계종단, 무소유정신으로 돌아갈 것”▼

“불교 조계종단은 ‘일의일발칠가식’(一衣一鉢七家食·한 벌의 옷과 한 그릇의 발우로 일곱 집을 돌아다니며 얻어먹음)을 실천한 부처님의 무소유 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봉은사 주지 명진(사진) 스님은 사찰의 세입세출 명세를 공개키로 한 것에 대해 “사찰 재정을 주지 등이 사유재산처럼 쓸 수 없도록 해 종단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고 밝혔다.

1994년과 1998년 종단 분규나 최근 동국대 사태 등 종단 내 크고 작은 분란의 원인이 스님들의 물질에 대한 집착에 있기 때문에 무소유에 입각한 근본적 치유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명진 스님은 “10월 19일 경북 문경시 봉암사에서 2000여 명의 스님이 모여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참회 법회를 가졌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없었다”며 “사찰 세출세입 명세의 공개는 주지 임명이나 선거를 둘러싼 부정과 계파 형성을 막는 장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찰 재정 투명화가 기존 관행과 배치되는 점이 많아 불편하고 외부로부터 ‘너희만 깨끗하냐’라는 욕도 먹을 것”이라며 “하지만 봉은사의 공개가 사찰들이 같은 제도를 도입하는 기폭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공개를 서둘렀다”라고 말했다.

명진 스님은 지난해 12월 5일부터 매일 1000배의 참회 기도를 올리면서 참종교와 수행자 본연의 자세를 다지고 있는 불교계 중진이다.

“궁극적으론 스님이 돈을 만져서는 안 됩니다. 사찰의 곳간은 신도에게 맡기고 일부 스님이 관리 감독 책임만 지는 게 옳습니다. 다른 스님들은 수행 정진 기도 등 출가의 참뜻을 살릴 수 있는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