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生엔 한국스님 되고파”

  • 입력 2007년 12월 6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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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이후 한국 불교와 인연을 맺어온 무진 스님은 “신을 믿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서양 종교와 달리, 한국 불교는 스스로 마음을 알아 나가는 자유로움이 매력”이라고 말했다. 사진 제공 조계종
1984년 이후 한국 불교와 인연을 맺어온 무진 스님은 “신을 믿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서양 종교와 달리, 한국 불교는 스스로 마음을 알아 나가는 자유로움이 매력”이라고 말했다. 사진 제공 조계종
외국인 첫 조계종 포교상 받은 무진스님 “스위스서 사찰짓고 포교중”

“‘모든 게 완전하다(Everything is perfect)’는 원명 스님의 말 한마디에 한국 불교를 배우고자 결심했습니다.”

벽안의 비구니 무진(無盡·속명 엑세니아 폴루닌·58) 스님이 5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제19회 조계종 포교대상 시상식에서 원력상(願力賞)을 받았다. 외국인 출가자가 조계종단에서 이 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국 출신인 무진 스님은 20여 년 전 한국 불교와의 인연이 망치로 머리를 맞는 느낌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당시 싱가포르에서 10년째 스님으로 지내던 그는 원명 스님에게서 받은 충격을 이렇게 되새겼다.

“소승불교에선 인생은 고달프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죠. 그런데 모든 게 완전하다니. 동전의 양면 같은 얘기지만 한국 불교의 발상에 매료돼 한국행을 택했어요.”

1984년 한국에 온 그는 2주 만에 해인사 하안거 결제에 들어가기 위해 3000배를 하고 성철 스님에게서 ‘마삼근(麻三斤)’이라는 화두를 받았다.

그는 “화두를 들고 정진하는 간화선은 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의 자유를 얻는 수행법이어서 누구든 배우면 행복하게 사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해 울산 석남사에서 인홍 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받고 조계종 스님이 됐다. 이후 석남사 선방에 들어가 하안거 동안거를 두 차례씩 지내며 하루 20시간 용맹정진을 하기도 했다.

무진 스님은 1987년 원명 스님과 함께 인천 강화도에 연등국제불교회관을 설립해 10여 년간 영어로 한국 불교를 가르쳤고 1988년 서울올림픽 때는 국제포교사 양성 교재와 교육과정을 만들어 제1기 국제포교사를 배출하는 등 한국 불교의 세계화에 기여했다.

그는 또 1998년 이후 스위스 뉴질랜드 싱가포르 대만에서 불교 강의를 하고 있다. 올 4월에는 비로자나 국제선원 주지 자우 스님과 스위스 제네바에서 한국문화축제를 열어 한국불교를 알리기도 했다. 2005년부터는 스위스 로잔 근처에 법계사를 짓고 한국 스님과 같은 방식으로 생활하고 있다.

“30년 스님 생활도 그렇지만 상을 받은 것도 다 나를 입히고 먹이고 가르쳐 준 분들 덕분이죠. 요즘은 좋은 일이 생기든, 나쁜 일이 생기든 ‘좋다 나쁘다’는 분별심을 갖지 않고 그냥 다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요. 분별심을 내면 마음이 불편해져 행복하게 살 수 없어요.”

그는 “1974년 불교를 처음 접해 계를 받을 때 ‘집에 돌아온 느낌’을 받았는데 한국 절에 가면 똑같은 느낌이 든다”며 “다음 생에는 한국에서 태어나 진짜 한국 스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특별한 포교 비결이 있느냐는 물음에 “인연이 있으면 저절로 오게 돼 있고 다만 그때를 위해 잘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대선으로 화제가 옮아가자 이렇게 말했다.

“지금 대선을 앞둔 미국인한테도 똑같은 얘길 했는데요, 가장 안 나쁜 사람 찍으세요.”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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