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경북 포항시청에서 열린 국수전 도전기 제2국.
중반 무렵 윤 국수는 필승의 형세를 만들어 놓았다. 그의 앞에 수많은 길이 놓여 있었다. 100가지 선택 중 99개는 ‘개선문’으로 향해 있었다. 오직 하나의 길만 ‘패배의 늪’으로 가는 방향이었다. 눈 감고 선택해도 늪에 빠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믿었다. 대마를 잡지 않아도 20여 집 이긴 상황이었다. 하지만 윤 국수는 상대인 이세돌 9단의 대마를 잡으러 간 선택이 당연하다고 믿었다. 이 9단의 성적이 요즘 좀 좋은가. 도전 5번기에서 한 판을 진 상황인 만큼 이번에 확실히 대마를 잡고 이겨 이 9단의 기세를 꺾어야 한다는 판단에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윤 국수는 가장 확실하다고 믿은 길로 들어섰다. 그 길은 평온하고 향기로웠다. 늪은커녕 승리로 가는 탄탄대로라고 확신했다. 늪은 있을 데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발이 쑥 빠지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늪이었다.
장면도 흑 1이 늪으로 발을 들여 놓은 패착이었다. 백 대마를 잡으러 가는 가장 강퍅한 수였다. 하지만 그는 미처 백 8, 10의 묘수를 떠올리지 못했다.
‘가’와 ‘나’가 맛보기여서 백 대마는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살았다. 만약 흑이 참고도 흑 1로 보강하면 백 16까지 멋지게 살아간다.
이 무렵 검토실에선 서봉수 9단이 목소리를 높였다.
“5000년 바둑사에서 있을 수 없는 패배야, 내가 2회 응씨배 결승 최종국에서 일본의 오다케 히데오 9단에게 대역전극을 펼친 것도 이 바둑보단 못해. 어떻게 이런 바둑이 역전되나.”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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