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고 끝에 악수 안 두죠”

  • 입력 2007년 12월 6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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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고파 바둑 왜

바둑 농담 중에 이런 게 있다. ‘장고파인 일본의 조치훈 9단과 한국의 이희성 7단이 맞붙으면 누가 먼저 지칠까.’ 답은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이다.

이들은 초반부터 뻔한 장면에서도 시간을 물 쓰듯 쓴다. 곁에서 지켜보는 이들이 안달이 날 지경이다. 국내의 대표적인 장고파는 이희성 7단을 비롯해 목진석 안조영 박정상 9단 등. 이들은 왜 초반부터 장고를 하는 것일까.

▽장고파는 완벽주의자=이들은 오래 생각하는 습관을 “고치려야 고칠 수 없다”고 말한다. 안 9단은 “일종의 완벽주의 같은 것이다. 가능한 모든 수를 다 읽는다. 납득이 가지 않으면 읽고 또 읽는다”고 말했다. 이 7단도 “손이 안 나가는 게 버릇이 됐다. 손이 나가려다가도 한 번 더 생각해 봐야지 하는 마음에 손을 거둔다”고 말했다.

이들은 시간을 많이 쓰다 보니 60∼70수가 지나면 초읽기에 몰리는 게 다반사다. 그러나 이들은 초읽기에 몰려도 당황하거나 초조해하지 않는다. 이 7단은 “초읽기에 몰리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특히 1분짜리 초읽기라면 계가한 뒤에도 다음 수를 읽는 데 충분하다고 한다.

▽포석을 중시=장고파들은 초반 중반 종반 중 초반을 특히 중시한다. 목 9단은 “초반 포석을 잘 짜놓으면 바둑이 편해진다”며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포석을 짜놓으면 역전당할 확률도 크게 줄어든다”고 말했다.

이들은 포석당 40∼50수씩 읽고 이런 포석을 40∼50개씩 생각한다. 포석에서 벌써 2000수 안팎을 읽는다는 얘기다. 이창호 9단도 과거 한 인터뷰에서 “포석을 둘 때 한 수를 두기 위해 100수 넘게 읽은 적도 있다”고 말한 적도 있다.

그러나 포석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다 중반 이후 중요 고비마다 시간 부족에 허덕이지는 않을까. 목 9단은 “그 말도 맞지만 초반부터 끌려 다니는 것보다 한 번이라도 유리한 국면을 이끌다가 지는 게 낫다”고 말했다.

▽심리적 전술=장고를 하면 상대가 지친다. 뻔한 수순인데도 장고를 하면 상대는 별의별 생각을 하다가 지쳐 버린다는 것. 이 7단은 “장고를 하면 상대가 지치는 게 눈에 보인다. 심리전이 아니라 내 스타일대로 두는데도 상대가 제풀에 넘어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고파들이 맥을 못 추는 기풍도 있다. 중국의 뤄시허(羅洗河) 9단처럼 상대의 돌이 나오면 지체 없이 맞두는 초속기파가 그것이다. 장고파는 20∼30분 고민하다가 한 수를 뒀는데 상대가 곧장 두면 은근히 기분이 나빠진다는 것이다. 장고파 기사들은 “차라리 같은 장고파 기사를 만나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말한다.

▽줄어드는 장고파=10년 전만 해도 제한시간 4∼5시간짜리 기전이 많았으나 요즘은 속기전이 많다. 제한시간 3시간짜리 대회는 국수전과 GS칼텍스배뿐이고 나머지는 1시간 이내. 제한시간 10분에 30초 초읽기 3회를 주는 기전도 적지 않다.

안 9단은 “늘어나는 속기전에 적응하기 위해 최근에는 초반에 빨리 두려고 한다”며 “예전에는 최선의 수를 발견하기 전까지 두지 않았지만 이제는 시간 문제 때문에 차선의 수를 선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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